한국이우리입양인에게 지쳐가는지?

 

이것이 내가 알게된 것이다… 더 이상 입양인들이 한국에서 새로운 입양법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수 없고, 한국에 있는 비 정부기관인 NGO가 입양인들을 위한 연방기금을 잃었고,  이곳에 있는 성인입양단체들이 기금을 조성하는데 계속 힘겨워하고 있으며,  입양인들을 재외 한국인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입양된후의 서비스는 지금 이곳의 아이들을 보살펴야하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때의  요구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원이며, 이곳 한국에  200여개 이상의 남아있는 고아원들이 문을 닫아야할지에  대하여 아무런  회담도 없고, 그들을 입양할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수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다.

한국이 우리 입양인들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이런 상황이 내게 의문을 준다?  내가보는 견해는, 입양인들이  계속 엄청난 규모의 모국방문 순례를 하고 있고,  한국에서  많은 돈을 쓰며,  호텔에 묵고,  여러번 많이 택시도 타고, 모든 관광지도 방문하고,  여러 사찰과 상점도 간다.   하물며 우리의 가족까지 데리고 방문하며, 한번만 방문하는것이 아니고, 여러번 한국을 방문한다.   지난 15년간, 나는 적어도 6번 한국을 방문했다.   비행기 비용하나만 하더라도, 대한항공은  무시할수 없을만큼의 액수다.   나는 다른곳 어디도  6번이상 방문한 곳이 없다.

아마도 이제 전략을 바꾸어야할 시기인것 같다.   국가 배상금을 기다리기 보다, 다시 방문투 어와, 여행, 그리고 다시 사진찍을 기회를 요청하는것이 어떨지 생각해 본다.  내가 가르치려하듯 잘난체하려는 뜻은 없다.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믿고, 그리고 여기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많큼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사회에 속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미국과 한국의 가교역활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제발”이라고 요청하는 대신, “어떻게” 우리가 할수 있는가로 되어야한다.   어떻게 우리가 함께 논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무엇인가를 제의 할수 있는 성인으로서  보여질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협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까?

아마 이것은 단지 전략의 문제가 아니것 같지만, 이것에 관한 전반적인 모든것을 난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한국인들과 함께할때 어쩐지  “젠장 빌어먹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난 한국을 염려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내 모든것을 다 주는것에는 아직 준비가 않되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참관인이 나에겐 편안한것을 나는 안다.   언제든 내가 그룹과 함께있는 느낌일때, 나는 누군가 그룹밖에 있는 사람에게 다가갈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대단치않게 행동한다.   한국이 이런것을 알고 있는지?   상호간 서로 같은 감정일까?   한국은 우리 입양인들이 그들 밖의 사람으로서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런 감정을 깨는것이 너무 이질적인가?

이날까지 내가 아는 전부는, 지금도, 나는 한국이 그립다.    난 이번주 나의 엄마에게 3번의 전화를 했는데,  이것은 내가 나의 엄마를 알고  17년간의 전대미문으로 가장 많이 전화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해야할 이유를 계속 만들고 있다  – 나의 강연이나, 내 둘째 아들의 생일이나, 내 생일, 나의 첫번째 아들의 생일등… 오직 나만을 위하여 한국말 하는 것을 듣고 싶다.

어제 이 사진을 Apple 상점밖에서 나의 droid로 찍었다.   나는I- 로 된 어느것 (아이폰, 아이패드등)도 갖고있지 않고, 조만간 이 상태를 바꿀려는 의도도 없다.   그러나 Steve Jobs는 입양되었고, 그래서 난 특별히 재미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Stanford 대학 졸업식연설이 상징적이었는데,  그는 자기자신이 가차없는 끈질김과, 열정, 투지넘치는 몰입과 조금은 만사를 자기뜻대로하는 컨트롤하기 힘든 그런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하였다.   내게는, 같은 입양인으로서, 이런 관점에서 나도 늘 내 자신이 컨트롤 해야할 필요를 느끼는 이런 친밀한 관계에 이숙해졌다.  입양의 관점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즐거웠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느냐 하느것이 내게는 흥미롭다.   나의 리스트 친구들중의 한 친구가  Steve Jobs의 생부에 관한 기사steve-jobs-was-an-arab-american   를보내 왔다.    나의 친구는  Jobs이 친형제들과의  장기간의 관계와 친아버지와 친아들과의 의도적으로 소원해진 사이에 관하여 아주 흥미로워 하였다.   왠지 나는 그 이유를 알것같다.   보고싶은  갈망으로 나의 남동생을 진정으로 보고싶다, 나의 엄마에 대하여는 무어라고 할말이 없다.   그 기사에서 내가 얻은 것은,  아들이 그의 아버지로와 별반 다른것 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재미있다.   DNA는 정말 강력한 것이다.   Job의 생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고,  Steve Jobs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였다.   둘다 모두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천재적인 사람이 죽은것이  모든 세상사람들이 슬퍼하는것을 아는데, 내겐 이것이 좀더 개인적인 느낌이다.  또 다른 우리 입양인의 작은 공동체중의 한사람을 잃는것이 슬프다.

고마움, 입양의 네 글자로된 좋지않은 말!

Deann  Borshay의 영화, “First Person Plural”에서,  “나는 나의 입양엄마에게 나의 생모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의 입에 더러운  것를 넣는 기분이다.”라고 여주인공이 말하는.   만약 내가 입양된것에 대하여 어떤 좋지않은 말을 하면, 이것이 나의 입양부모에 대하여  모욕이며 상처를 준다고  나는믿으며, 그들이  한일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것 뿐인데; 이런 말을 한다면 감사할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들린다.   사실은 나는 나의 입양부모님께서  입양 결정을 선택한것에장면이 있다.   내가 늘 생각해 왔던, 나의 생모에 관한 말뿐만 아니라 입양에 관하여  전반적인것을 느끼고 있던것들을,  다른 입양인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마침내  듣게되니, 이말들이 계속 나의 머리속에 잠재하고있다대하여 감사한다.   가족이라는 선물을 나에게 주신것에 대하여도 감사하고, 가족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해주신것도 감사한다.   또 나의 자매들에게도 감사하고, 부모님이  나에게 가치관의  의미를 심어주신것도 감사한다.   나는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자주 머리에 떠올린다.   난 입양되지않은 사람들이, 낳아주신 그들의 부모님께, 얼마나 자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입양된것이 그저  임의로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달렸다, 즉 이것이 운명인듯하다.   그들의 아이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부모가 아이들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누구든 입양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선택하려해서 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 입양인들은 다른이들이 갈망하는 그런 가능성과  기회가  주어져서 우리가 얼마나 행운아인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이런말이 진실성과는  너무 거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는 견해는,  정말 감사하는것의 문제는,  어떤 시점에서  이런 감사하는 마음을 그만두어야할지  내게 의문을 낳게 한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내가 정말 감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어느시기에  내가 이런 감사의 말을 하는것을 그만둘수 있을까?   난  전혀 그 답을 얻을수 없었다.    이런 감사의 표시가 절대 충분한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곳에 있고,  또 이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지않고 지나는 주가 거의 없는 현상이다.    이런것이 모든 즐거움의 행복이 괴로우면서 즐거운 예측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될 자격을  어째서  내가 갖으면 안될까?   우리는 모두 이런 자격을 갖일만 하지 않은가?

그러면, 아니, 난는 입양된것이 감사하지 않다.    나는 ‘감사함’ 과 ‘입양’을 같은 문장에 함께 쓰지 않는다.   이런말을 내놓고 하는것이 악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매번의 도전을 기회로서 여기며,  나의 용기로서 받아들이고, 이런 기회들을 진실로 감사하고 있다.   만약 내가 입양되지 않았다면, 그래도 지금의 나였을까?  아마도.    내가 없었더라면 모든것이 다른 상황일까?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진실로 감사하다.

아름다운아시아인의얼굴들

한국 드라마를 보는 습관이 다시 새롭게 돌아왔다!   가능한 많은 한국어를 알려고 노력하는중에, 매일밤 한국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이것이  가능한한  많은 한국말을 완전히 몰두하려는 순수한 연습이었다.   아뿔사, 연속극 보는것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나의 공주님”으로부터 “꽃보다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연속극들을 각처의  Netflix에 주문해  보았다!

우선 처음 보면서, 내가 알아챈 전부는 Make-up과 성형수술이었는데, 이로 인해 모든 배우들이 다 똑같아 보여서 혼돈되었다.   남성들이 너무 여성적이며, 쇼에 나오는 어떤 여성들보다도 더 예뻐 보이는것이  즐거우면서도 거슬렸다.   그리고, Stockholm Syndrome, (인질이 범인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  처럼, 내가 더 많은 비디오와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더 많은 아름다운 남성 (으흠, 남성들이여) 들이 나를 처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론, 나는 아름다운 남성들을 Google에서 찾아야만 했다.

엄청난수의 사진에서부터, 비디오들, blogs과 websites 가 모든 KPop 과 한국 드라마들을 헌신적으로 보여주었고, 난 송승헌의 인형인 이 사진을 발견했다.

아시안사람처럼 보입니까?   미국에서 아시안 인형을,  아시안 사람처럼 아무도 만들수 없는것이 참 신기하지 않아요?   미국소녀 인형들은 애처로운 중국소녀같은 모습을 갖고있다.   내 생각엔 우리의 수입품들을 다시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보편적인 것을 바꾸는 아이디어로, 이 송승헌의 인형을 나의 Ken 인형(미국 Barbie 인형의 남자친구 인형)으로  대처해 간직해야할까?  참으로 요절할 일이다.

중립적인것은너무지루하다

아, 말도안되는, 정상이 아닌  나의 이번주에서 어떻게 헤어나올수 있을까?   이런것보다  코감기와 편두통에 걸리는편이 더 나을듯싶다.  자,  지금부터 나의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가자…..

나는 대통령과 만난후,  몇번의 인터뷰를 했고,  나의 기본적 견해들을 나의 연설에 제시하면서,  짧은 대답으로  답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보도자들의 요청에 절대 만족할수 없음을 알게되었다.    모든 대답은 조심스럽게 다듬어지고, 외교적이며, 잘 정돈되고, 솔직하고, 장황하며 지루하다.   나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관점을 두며 열정적으로 강연을 하였는데,  어느 누구도 전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같아서 정말 의문스럽다.  결국, 우리들 입양인들은 화가나있고, 반대하거나 동의하는 무례한 사람들로 평판이 나있다.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다.

나름대로 나도 나의 생각과 주장이 있고, 내 의견을  뒷받침할만한 얼마간의 연구도 갖고있다.   입양이 되었다는 것이 친구가 말하듯, “정말 힘든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믿고있는 우리 많은 입양인들이 극복한 힘든 도전들이  수많은 입양부모들과, 이분야의 전문인들과 그리고 우리가 단지 행복하고, 성공하고  잘살수 있기를 바라는  다른 입양인들에 의하여 침묵되고 있음을 알고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더 강한 의지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른 견해로 그들자신이 옳다고하며, 그들과 같은 생각을 나도 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인하여 서로 다투며 사는 대신,  나의 아이들과 남편에 대하여 나는 더 많은 열정을 갖고, 나의 엄마와 더 나은 관계를 갖도록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싶다.   나의  전문분야인 입양의 세계에서 입양인들로부터 끊임없이 계속 듣는 그들의 사랑과 받아들여짐의 권리에 관한 질문들을 들어주여야 하고,  아픔과, 눈물과 슬픔을 잘 견디기 위하여 나의 힘을 아껴야만 한다.   나의 무관심하고 심드렁한 청소년들, 그들의 입양에 관한 얘기의 전후사정에 관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계속해서 이들을 납득시키위해서도  나는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있어야한다.   버려지고, 거절당하고, 잘못된 정보나 또 전혀 정보가 없는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나는 강해져야한다.   용기를 내어 입양인들에게 어떤때는 이런 문제들이,  어느 누구나 비슷한것처럼,  입양으로인한것이 전혀 아니고, 단지 가족이기때문에 있을수 있는 일, 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기위해 나머지 작은 여분의 에너지도 갖고있어야한다.   그래서, 이런 모든 이유로  나의 중심을 유지할수 있고, 나  자신의 버려짐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것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길 갈망하는 그런마음이기에,나를 위해서도 에너지를 남겨놓아야한다.

입양인들이 받은 이런 모든 설문조사들과, 질문서들, 그리고 인터뷰들의 대답이 입양인 전체 공동체를 반영하는데 실패였다.   수백명은, 그러나 우리들 수천명중의 고작 1 내지 2% 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단지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이런 통계와 인용자료를 산출제시했을때, 내가 공정하고 정확히 했는지?   아이를 다른곳으로 옮겨심는것 같은  느낌이라던가, 아이의 정체성을 떼어버리는것이 정말 어마어마한 부당한 일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했는가?

나의 주장이  아직 그래도 문제로서 제기 되고, 들어준다고 느낄때, 내가 30 이 되기 전에 Evan B. Donaldson 입양기관에 한국 성인 입양인들의 모임 리포트를 쓴적이 있다.    다른 인종간의 커플로서 그녀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거부한, 백인과 결혼한  다른 한국입양인 여성이, 나의 오만한  “입양인들의 소리” 를 그만두게 했다.    이 입양인이 나의 “연구”에 대하여, 정확한 것이 아니며, 결함이 있다고  갈갈이 찢어지게 하고, 이 주장이, 나의  개인선택 샘플이며, 그녀자신은  이런  내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아이를 입양하려 왔는데,  그녀의 이야기와, 기억과 눈물에 대하여 도대체 내가 왜 물었는지, 그녀는 이런 조언엔 관심도 없었다.   감사하는것이 문제가 아니고, 아이가 관건이다.   그녀는 모든  입양인들이 같은 정체성이라는 나의 모든 생각에 도전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힘들어하고 있음을 내가  충분히 알고있고,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부인하는것을 보며, 그녀를 대신해서, 또 많은 입양인들의 목소리를 그들로 부터 전혀 들은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 자신이 더 자만심이 생기기전에,  내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입양에 관하여 전혀 다시 다 끝내지 않았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양면가치를 두고있는   그녀의 내면에 무엇인가 재조명되는것에, 내가 기여했기를 바란다.   그녀는 나를 달라지게 했다.  그녀로 인하여 난 배웠다.   나는 그러나 한목소리이다 그리고 오직 한 목소리의 주장일뿐이다.

President Lee Myung Bak 

끝났다.   긍정적임이 확실한것이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 그리고 영부인과 함께 있다.   나의 연설이 내가 바라던 대로 아주 잘 끝났다.   곧 나의 비디오 강연을 불로그에 올리겠다.  대통령께서 나의 강연후에  주목할만한 말씀을 주셨지만, 모두 한국말이어서, 우선 이 말씀을 모두 번역해야한다.

나와, 또 그날저녁  함께했던 나의 입양인 동료들에게  이날이 아주 의미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내가 바랐던 것은, 그방에 함께했던 400명의 한국인들이 뭔가 새로운, 나의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들은것이다.   나는 나의 정해진 3분보다 1분 30초가량 넘게 사용했지만, 오버한 시간에 대해 경고를 주지도 않았고, 또 그만 얘기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얘기하고자하는 것을 모두 했고,  다 성장한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것을 보았으며, 굉장한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내 생각엔 이것이 내가 한국말로 연설하는 노력으로 인해 더 많은 박수를 받은것 같다.   대통령께서 나의 진심을 알아주셨기를 바란다.

계속 이어집니다….

4.5 minutes with the President

나는 대중연설하는 것에 익숙해져간다.  연설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좀더 내가하고있는 일에 관하여  열정을 갖고, 나를 주시하며 처다보고 있는  방안가득찬 사람들에게 두려운 감정을  넘기고, 그들을 개의치 않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난 수요일저녁은 평상시와 같은 강연이 아니였다.   이 연설은  완벽해야 했다.  아직도 내 것이 되지않은 모국어를 이해해야만 했다.

계속해서 몇번이고 나의 한국어 강연을 연습하는것 말고는 준비하는데 별로 힘든것이 없었다.   그 방안의 400명중,  그날 저녁  알아낸 것은,  내가  5사람의 강연자중 선택된 한 사람인것 이다.    나는 짧게해야 했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중단시킬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음식과 드링크가 서브되기전에 연설을 하는것이였다.   대통령과 영부인께서는 아주 힘든 빡빡한 일정을 갖고 계셨지만,  이 바쁜일정이 대통령께서 우리에게  좀더 긴 연설을 하시는것을 단념시키지는 못했다.  강연내용이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웠나 보다, 그러나 나는 정말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조사해서 얻은 내용은, 대통령께서 지역적인 한계를 떠나, 어느지방에서 왔건,  한국에서처럼 일반적으로  Korean American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격려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당신이  어느지방에서 왔느냐에 따라, 언제나 항상 중요한 의미로 , 당신이 얼마나 정직하고 또 얼마나 잘 생겼는지 이런 상투적인 의미를 만들어 낸다.   바램하기를, 나의 강연이 이러한 정서와 많이 관련되어서,  한국인 입양인들을, 이 일반화된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라는 감정에 흡수되어, 이것이 대통령께 잘 전달되기를 바램하였다.    사실, 나는 나의 메세지가 설득력있게 전달될수 있도록,  그래서  어느말을 빼버려야 할지 너무 바쁘게 고민하느라고 몹시 흥분하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나의 의견을 전달하는 강연자였다.   처음 4명의 강연자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채, 원고도없이 말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국 지도자를 향하여  연설하는것이 거의 흡사해 보였다.   나보다 먼저 강연한 여성은 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전시 책임자였다.   강연을 하는 그녀는 정말 대단했고, 재미있었고, 사사롭게 개인적이었으며, 지식이 많고 설득력있는 연설이었다.   나는 두려움에 영어로 할수 있기를 정말 많이 바랬다.   사실 내가 영어로만 할 수만 있었다면 나도 그와 같은 연설을 할수 있다.

뉴욕의 영사관은  언어수업과 문화교육의 중요성을 나의 강연에 넣을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그것을 빼버렸다.  그래서, 너무 재미있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는데,  우연히 부주의로 나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나는 여보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한국말을 더 많이 배우고 싶다….내가 정말로 우스웠다는 것을 그날 저녁 늦게 알았다.

강연은 잘 끝났다.  나는 방안이 단지 조용한 고요함만을 들었다.   나는 한번 실수를 했고, 그래서 빨리 사과를 했는데, 걷잡을 수 없는 많은 박수를 받고 나는 놀랐다.   소란한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그리고 나는 나의 강연을 잘 마쳤다.   나는 대통령과 악수를 했고,  영부인께서도 악수를 하시겠다고 해서 유쾌한 놀라움이었고,  그녀로부터 정말 좋은 호평도 받았다.   나의 강연이 정말 잘 마무리졌다고 믿는다.

이 강연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다른 입양인들이  여기에 와서 함께 인정을 받은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이곳에 와 볼수 있는것이 내가 몇시간씩 강연내용을 연습하는것 과 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악수한 많은 손들과, 찬사를 받은것을  역시 그들과  함께 나누었다.   나 자신과 나의 동료 입양인들을 위하여 함께 나누고, 대변자로서 봉사할때 나의 최선을 다한다.   우리에게 정말 훌륭한 저녁이었다.

지금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가 인식되어지고, 우리의 메세지를 듣고, 이해하게되는것이 정말 기쁘다.   그날 저녁 뉴욕에 있는 3개 주요신문사들과의  인터뷰 요청과,나의 연설 내용의 복사본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몇몇 가장중요한 순간의 애정과 유머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 이 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에서,  전형적인 뉴욕시의  순간을 빼놓을 수 없다.   교통은 악날할정도로 극에 달했고, 그래서 손에 가운을 들고, 신고있는 하이힐은 걷기 힘들어 우리는 결국  5th Ave까지 터덜터덜 느리게 걸었다.
  • 나의 이름표도 엉망이었다 – Joy Rho(No라고 발음됐다)라고 되어있었다.   한국말로 성을 먼저 읽기때문에, 사람들이 처음 언뜻 보고, 나를 Cho I-No, 조이 노 라고 불렀다.   또 나를 사회복지사나 입양인으로서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뉴욕시  주요국제모임의 카운셀러(이것은 나의 다른파트타임 일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분명 그 직함의 신분은 진짜 내가 여기에 온 진정한이유보다는 훨씬 더 명망있는 지위다.

 

 

  •                           이것이 나의 남편의 이름표이다.   간단히 표기해서,  이렇게 그가 나의 남편이라고 씌어있다.   이제, 강한 자부심의 강한 남자로 이렇게 씌어진 이름표를 달고 돌아다닐수 있다.  그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달았다.   실제로 그는,그날 나의 저녁을 위한  괜찮은 액세서리였다.
  • 어디에서건 중요한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나에게는, 두명의 Ahn자매와 함께 사진을 찍은것이 하일라이트였다.   정말 흥분된 순간이었다.
  • 마지막, 그러나 정말 역시 중요한것은, 나의 아이가 다음날 아침 이를 닦으며  의미심장하게 내게 물었다 – 엄마 강연이 잘 되었어요, 그들이 엄마가 한 말을 잘 이해하던가요?   잘됐어.  그래 정말로 강연이 잘됐고 잘한일이었다.

그날저녁이 즐거웠고, 그 이상으로  내가 이 기회를 갖일수 있던것에 감격하고, 나는 이 강력한 영향을 아직 잃지않고 있다.   나는 대통령께서 무엇인가 듣고 이해하셨기를 바라며, 이것을 고국에 함께 갖고 가시기를 바란다.  또 영부인께서도 무엇인가 느끼시고, 이 건에 대하여 그녀의 남편에게 주지시켜 주시기를 나는 감히 바램한다.    나의 메세지가  순간적인, 잠시의 주목이  아니길 바라며, 단지 나와 그리고 한번의 좋은 저녁의 이벤트보다는 뭔가 좀더 큰 일로  항상 여겨지기를 바란다.

안녕하세요대통령님….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나는 허둥지둥대며, 대한민국 대통령앞에서 연설을 하겠다고, 예스라고 대답한 나의 운명적인 결심에 대해 거의 히스테리적으로 생각하며, 계속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다.  한국말 번역은 매우 어려운, 길고 쉽지않은 작업이었고, 나의 꽤 괜찮은 한국어 실력에 대한  자부심마저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아아, 내가 정확히 한국으로 부터의 입양상태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말할수 있는, 일생에 한번 있을까하는 이런기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준비한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정말이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꽤 재미있을 것이다.   나의 연설시간은 단 3분간이다.   이미 난 연설내용을, 몇몇 나의 생각들을 짧게 바꿀것을 권고받았다.   몇개 가능한 선택 원고초안을 모두 잘  검토한후, 나의 연설내용들이 줄어들었고, 또 잘려나갔음을 알았다.   나의 연설내용의 선택과 변경은,  더많은 한국말 수업과 문화교육에 관해  삭제할 것을 요청받았다.   정치에 관련된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전하고자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번역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또 나의 훌륭하신 시어머니께서 나와 함께 앉아, 연설의 성격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해야할지 도와주심에, 대단히 감사한 마음이다.    6시간 이상 함께 하며, 우리는 처음으로  내가하고 있는 일과, 또 입양의 상태에 관하여  어머니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사람의 관점이나 시각을 바꿀수 있는 것은 기분을 돋구는 좋은일이다.  이것을 하기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은, 한번에 한사람씩하는거다.

여기, 자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한국입양인 단체를 대표하여 저의 생각을 말씀드릴수 있게,  오늘 이곳에 초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1976년에 한국 고아 어린이의 집에서 입양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6살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간 발렌티어로 일하기 위하여 그 어린이집에 다시 갔습니다.    1994년 저는 저를 낳아주신, 21년간이나 저를 찾고계셨던  친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또 입양된 아이들을 도와주는 심리치료사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전에 이미 들어본적이 없는것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입양인들이 국제입양하는 것을 중지하길 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수천명의 입양인들이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정말 힘들어하는것도 알고있습니다.   우리 입양인들은 훌륭한 성공과 엄청난 아픔의 이야기를 갖고있지만, 우리들 마음속엔, 우리 대부분  모두는 모국으로부터  자랑스런  긍지와 우리가  받아들여짐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250,000명이며, 여기  미국내에만  10%의  Korean American 공동체가 있습니다.

자라면서,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며, 하나의 한국이다  라고 한국인들이 자주  제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말이 진실임을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님께 어떻게 우리가 한 가족이 될수 있고, 또 우리 모두의 아이들, 미국과  유럽에 있는, 그리고 한국의 아이들이  모두 다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성장 할수 있도록 어떻게 보호하고, 교육시키고, 강하게 힘을줄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주십사고 요청합니다.

오늘저녁, 저는 미국에서 성장할 저의 두 아이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그들의 자랑스런 문화   유산에 대하여 제가 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저는 모든 입양된 아이들,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또 미국인으로서, 두나라 모두 자기의 조국이라 부를수 있는, 이 어린이들을 생각합니다.   엄마로서, 그들을 가르치고, 보호하고 또 격려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 국내에 있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의  복지 후생을 생각하실줄 압니다.   저의 바람은 대통령님께서 미혼모 엄마들을 도와주셔서,  혼자서도 그들의 아이를 키울수 있고, 어린이가 가장인 아이들을 위하여 장학금을 보조해주는 프로그램을 조성하고, 더 많은 한국인이 아이들을 국내에  입양할 수 있고, 또 해외로의 입양도 인지시키는 켐페인을 장려하며, 그리고 수천만명의 아이들이, 고아로서 성장하지 않도록,  가정에 소속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고려해 주실것을 바랍니다.   저는 대통령 님께서  당신의 시민들의 생활이 단계적으로 향상되고, 모든 변화하는것을 주시하시리라 바라고, 단지  애석한 일의 압력으로  대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저희들, 국제입양인들도 변화하는 한 부분으로서  포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개개인을 세계적인 국제적 가족의 한 부분으로서 대우하며, 대한민국이  하나의 나라로서 리드할 수 있게합시다.

마지막으로, 저는 오늘저녁 여기  혼자가 아닙니다. (모든 입양인들은 일어서 주시고, 저와함께 대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국제입양 조직 제도의 시험?

South Korean Adoptions: Canary in the International Adoption Mine?

http://www.creatingafamily.org/blog/adoption-domestic-adoption-international-adoption-embryo-adoption-foster-care-adoption/south-korean-adoptions-canary-international-adoption

이 기사를 읽어보세요.  나는 Dawn Davenport이 진행하는 라디오 쇼에 게스트로  참석하였는데, 그녀는 실제로 전체론적 심리의학으로 입양을 보고 있으며, 이것이  입양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것을 발견하였다.  제시 인용된 연구에 대하여 의구심이 일었다. 요즘 내놓은 이것이 믿을만한  연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모든 연구논문들이 말하길, 입양이 성공적이라고 하며, 다른 연구결과는 이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것은 누가 글을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들이 어떤 주장을 옹호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Howard Alstein 이나 Rita Simon 이 쓴 옛논문을 보더라도, 국제 입양인들이 입양이 안된사람이나, 또 백인에게 입양된 African American보다 더 좋은 처지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간의 속뜻을 잘 읽을수 있어야한다.  자부심과 그들의 자랑스런 민족성에 관하여 말하자면, 난 우리 한국입양인으로서, 우리가 좀더 좋은 처지라는 개념을 절대 받아들일수 없다.   우리가 어렸을때에는, 우리들중 많은수의 입양인들이  Korean Americans의 정체성으로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더 좋은 처지일수 있을까?

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이것을 꼭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말씀에감사합니다.

요즘 최근의 많은 새 독자들이 있어 영광이고,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싶고,  또 그들의 의견이 정말 도움이 되고 훌륭합니다.   제가 쓴 몇몇의  지난 포스트들도 체크하세요…. 계속 이어질수 있는 대화가 지속되길 바라며 – 저의 첫번째 “What if?” 가 코멘트를 얻었고, 다른 입양인들도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을 원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MHG에 저의 blog를 게재히 주셔서 다른이들이 읽을 수 있게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계속 저의 post를 읽고, 의견주시는것이  지속되기를!

Adoptionechoes

인구조사

최근에 나는 재미있는 탐구를 강압적으로 시도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인데, Korean Americans의 이민사 이야기를 기록으로 만들려고 하는사람이다 – www.koreanamericanstory.org.    한국입양인들의 이야기를 그의 생각에 잘 정립시키려는 중요한 작업의 정점의 시도에서,  나는 나만의 개인적인 조사를 시도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완료된 인구조사에서는, 한국에서 입양된 많은 수의 어린이들(또는 다른 나라에서 입양된)이 인구조사 양식에 가구주로서 포함되지않았음을 알았다.   만약 세대주가 백인일경우, 한국 어린이들은  예사로이  아시안이 아니라, 그냥 백인으로 잘못 기록되었다.  그들이 정말 그럴수가 있을까?   우리의 이민자들이 이 나라에 오던때는, 이민이 거의 최고조로 달할때였고, 우리들은  인구조사 수에 계산되지 않았다?

이것이 1999년 위싱턴 DC에서  처음으로 한국입양인들의 모임(http://www.adoptioninstitute.org/proed/korfindings.html) 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  관점을 증명해준다.   첫째, 한국입양의 역사를 쓰는데 있어, 전세계적으로 퍼저있는 한국입양인들의  가장 정확한 숫자를 찾는데만 몇개월이 걸렸다.   당연히 별로 놀랄일이 아니다!   둘째, 많은수의 나이가 제일 많은 참가자들, 그당시에  40대와 50대들은 자신들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럴수 있다고 생각된다.   난 Korean-African American 남자를 만난적이 있는데,  우리의 훌륭한 주말 모임이 끝날때까지, 그 자신이 절대 한국인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이 한국인인것에 대하여 질문하였지만, 답을 찾을수 없었기에 이  모임에 참석했다.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재빨리 진행된  2000년의 센서스,  이 이벤트에 나는 전폭적으로 참여하였다.   난 이것을 준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으며, 입양인들이 이런 센서스에서 카운트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시키는 것을 돕기위하여, 뉴욕의 Flushing(아시안 인구가 가장 많은지역)에서 있었던 행진에도 참여하였다.   이 이벤트를 통하여,  많은 Asian American들이 간신히 힘들어하며  삶을 지탱하고, 식료품할인 구매권을 얻거나, 교육을 받기위하여 노력하는 등등 여러가지 어려운 이런 처지를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이런것들이 우리들이 Ivy Leaguers에서 종종 많이듣는 누가 어떤이유로 아시안들이 더이상 장학금이나 학자금지원을 받을 자격이  불가능하다는 그런것이 아니다.   그 퍼레이드에서 나는 한국입양인으로서가 아니고, 나는 Korean American으로서 참여하였다.

인종적 정체성에 관하여 말하자면, 항상  나의 20대와 30대에 어떤 특권같은 느낌이다.   유색의 두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은 불가피한 일이라 믿는다.  그렇다,  미국에 살고있는 아시안은 유색인종이라 여긴다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도 소수집단이며, 하찮은 존재같은 느낌이며, 편견을 갖고 대해졌고, 외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미국에서 우리의 역사는 역시  완전한 인간으로서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미국내에서만 한국입양인은 거의 200,000명을 육박한다.   우리는 아직 Korean American인구의 10%이다.   모든 2십만명이  이와같은 감정을 갖고있는지 궁금하다?   전세계적으로 그 숫자는 더 퍼저가고, 그 이상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얼마나 많은 European Korean입양인들이 그들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할는지  의문이다?    ‘Korean’ 이란 말을 다른 민족으로 대치하면, 우리 입양인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것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것이 정말 문제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