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 우리는 성장했고…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것은 내가 아시아 사람들로 가득찬 방에 있었습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 역시 스스로 아시아인으로서 자신을 찿는 여정에 있었습니다. 내 친구는 이곳에서  분명 그의 꿈의 이상형의 여자친구를 찿을수 있을것 같다고 흥분하였습니다. 그러나 난, 나는 정말로 두려웠습니다. 그방에는 blond head 는  한명도 없었고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자신을 볼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주말의 그 구룹을 통해서  나는 나와 똑같은 한 큰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한  기분좋은것이었습니다!    판에박힌  상투적인 아시아인의 개념을 파괴하는 사람들과  모든것이  이것과 함께 간다; 강한 주장과 신체를 가진 여성.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모두 입양되었다는 부분이  날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주말은  내내 떨칠수 없는 망각의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한국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년을 살았습니다.    나는 고아원에서  일했는데, 그곳은 내가 미국에 오기전의 나의 집이었다.   다시한번,  또  나는  공항에서  출구의 문이 열렸을때 전부  까망머리의 물결만 보이고  단한명의  백인도 볼 수 없었을때  정말 당황했습니다.   나는 정말 처음 3 개월은 안좋은 여행자였습니다 –   위생, 성차별, 국가의  무질서,  또  정말 무분별한 버스 시스템에 대해서 불평해댔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잃었고  완전히 나의 본령(본분)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미국식의 생활방식에 꽉 매달려서  모든것을  비판했고, 모든것을  배타 했습니다.   그리고 4개월째에 어떤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한국인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또 실제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한국인의 인간성, 친절함과 호기심등을 보게 된것입니다.   나는 조용히 듣고  관찰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나를 낳아준 나라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또 어떤것이 날 계속 편치 않게했는데, 그것은 내가 이곳에 평생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반쪽의 마음과  영혼이 미국에 속해있음을  깨닫게되었습니다.

4년후, 400명의 다른 한국인 입양인들과 방에 있을때, 나는 정말 이제 고향으로 왔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평화스러운 대혼란이었습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 우리 모두의 진실한 가족으로 된  사람들과 있습니다.   나는 지금은 나의 가족의 일부분이 된 사람들과 친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그말로서 하나로 소속되어지고,  받아들여지고,  힘을 쓸수 있고, 사람의 이중성의 의미에 대해서 의식을 키울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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