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인, 입양인… Korean American 입양인

우리는 모두 경험하며,겪으며 산다.   자아 본질, 주체성의 발전은 … 이것이  내 작업의 향상이다….

미국인

인생의 말년에 터득한 불유쾌한 명언이 있는데, “ 추측하지마라,  그러면 모두에게 웃음거리만 된다.” 난 이것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나는 이런말을 꺼리낌없이 크게  말할 적당한 순간을 못 찾았거나 말 할 용기가 없었는데,  세상이 경고를 주었다, 언젠가 내가  하리라고.

난 항상 자신이 걸어다니는 국제입양 선전자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제서야 느끼고 깨달은것은 내가 입양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계속 와 닫는다.  어릴때에는 영어를 말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미국에 온후 처음 4 개월은 정말 그랬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나는 영어를 재빨리 말하기 시작했고  외국인처럼  발음이 안되게 하려고 부지런히 노력했다.   나는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언어를 익혀갔고 , 당연히 말을 잘하는 것에 가치를 둔 직업을 선택했다.   감정이입을  잘해서  다른 상대방에게  전달을 잘하는 것과  또 같은 방식으로 다른 이를 가르칠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 믿는다.

나는 열심히 하는 나의 일이 이나라에서  사는것이 위안이 되는것과 일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조심하기를 바란다.    모든 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고, 몰상식하고, 한결같은 비평들이, 이런 것들을 듣는사람으로 하여금 움츠러들게 하지만, 특별히  종족에  관한 문제에 대해선 더 그렇다.   우리는 정말, 지독히 어떤 사람들을 포장해서,  레벨을 붙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맞는것이라고 느끼고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경박한  웃음꺼리 행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미국은 melting  pot(인종이 뒤섞인 나라)이라는  제정신 같지않은  말이 있다.    이말을 쓰는 이유는 단지 많은 본질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있어서 이것을 설명하기위해 더많은 단어가  있기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임으로  번역할수 없다.   내 얼굴은 계속 비판의 먹이가 되었고  왜 그렇게 되야하는지  난 헤아릴수가 없다.    이것은  정말 상처를 주는 말까지  발생시키고, “ 짱꼴라(중국인)는  너희 나라로 가라!” “ 네가 분명 고아였기에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구나.”    나는 계속 나의 동지 미국인들로부터 그들이 내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아니면  어떤것들이 문제가 된것처럼,  만약 그들이 알아서  뭔가  바뀌고 나를 다르게 대해 준다면, 하는 염려로  방관되어 제외된체 있는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릴때에는,  내가  크게,  자랑스럽게 되리라는 전제하에 자랐고, 나의 부모님은 나의 구원자이고 이런 다른것들이 나쁘다고 여기며 자랐다.   나의 부모님은 늘 내게, 넌 아주 독특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독특하다는 말을 정말 싫어하면서 자랐고, 지금도 그말을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하는 것을 거절한다.   현실은 우리 모두 어디엔가 맞기를 원하고 또 어떤 구룹에 우리가 속해야 할지 알기원하고, 그리고 서로 서로 다른사람에게 받아들여지도록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원한다.   내게는 독특하다는 것은 혼자였음이었다.     오직 홀로임은 스스로에게 정말 고립되는 느낌이다.   독특하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수 없는 기분이다.   어린애로서  단지 원했던것은  따뜻한 손을 내밀며 사랑으로 그들의 품으로 데려가주는 거였다.

대표적인 미국 설화는  자수성가하는 사람은 그들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남긴다.   그 말이 내가 자라면서 얼마나 내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어른으로서  느끼는 것은 아무도 도움없이는  그들이 지금 서있는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너는 도움을 받았기에 행운이다 라고 얘기할때, 정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생각엔  그 의미가 입양이 됐고,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하는것은,  나의 장래에 대해서  스스로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설계할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한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자라면서,  난 고아였고 누군가 날 버렸다고, 또  나는 버려 졌다고, 나는 원하지 않는 아이였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오게된것이, 이런 기회가 주어진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느낌은 백인사회나, 나와 비슷한 한국 사회에서 모두 그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인이 이런말을 할때는 좀 더 덜 싫은 감정이었다.   아마도 나의 부모님이 무관심하지 않고  꽤 괜찮은  편이라서, 또 나도 그랬고.   슬프게도, 나는 어떤 비평들을 예상했다.    그러나 뭔가  매치가 안된것은   늘 나의 부모님이 너는  독특하다, 입양됐다, 한국인이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했는데,  또  내가 다른 한국인들로 부터 받은 반응이 부합이 안됐다.

한국인의 우연성에서 보면,  나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한국인임을 알고  느끼고 있었다.      내가 어렷을때  그 지방의 한국 교회에서  자녀를 입양한 부모에게  하루행사로 하는 “되돌려주는 – giving back” 에  우리 가족을 근처  공원에서하는 소풍에 초대한적이 이었다.   나와 나의 자매들이 원하던 것은 단지 음식 이였다 – 무한정량의  잘담궈진 김치와 맛있는 밥.  그러나 자라면서 이런 행사를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 그들의 질문들과  들려주는 말들이 한결 같았다:  너 한국이름이 뭐냐, 그게 무슨 뜻인지 아니,  너 한국말 배워야한다,  자랑스런 한국인의 긍지 를 갖고  공부 열심히 해아한다.    그런 다음 우리들은 거의 종일 내내 방치되었고,    한국인 아줌마가 우리에게 달려와서 음식을 더주는것으로 구제되는 시간이었다.  우스운 것은 그녀는 전혀 영어로 말하지 않았고 , 절대 우리에게 말도 건네지 않았다.   교회의 다른 아이들도 아무도 우리에게 와서 말을 건네지않았다.    그들은 그냥 우리들 주변을 걷고 있거나  자기들끼리 함께 이있다.    이런것은 우리가 그들의 가까운 그룹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자라지 않아서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겐 유별난, 기이하게 느껴져서겠지 –  그애들이 무어라 말해?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용서하려한다.    난 그들 모두가 다 영어를 할 줄아는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말만  했다.     난 그애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교회의 행사를 관심없이 지켜보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짐작되는 것은 , 왜 이런 훌륭한 교회사람들이 절대로 그들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는지,  왜 그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우리들과 함께 시간 보내라고 충고하지 않았는지  난 항상 그것이 알고 싶었다.   내가 늘  많이 듣던 한국인의 그 유명한 친절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래서 이  모든 일로해서  의문이 생겼다, 왜  내가  꼭 자랑스런 한국인이어야 하는지?     나의 부모님은, 어쨌든 영광스러운 손님으로 대우받았다 –  모든이에게 소개되었고, 모든이에게 감사 받았다.   교회의 교인들은 그들끼리 걸려 넘어지며,  나의 부모님을 만지고 , 악수하고, 끊임없이 감사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딸들을 둔것에 격려를 받았다.   왜 그렇게 많은 딸들을?    나의 부모님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런 행사를 싫어하는지 감지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런 행사에 가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내게는 정말 안심이었다.    백인들과 겪는 나의 사춘기를 지나는 것만해도 내게는 힘겨웠다.    한국인이라는 한국적인것을 생각안하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몇년간 나의  한국인에 대한 생각은 나를 그들중의 하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들의 가르침의 역할을 내 인생에 받아들였다면, 좋다, 그러나  난 절대 그들과 사교하지 않고, 그들의 아들들과 절대 데이트 하는 일은 분명히 없을것이다.

우스운 것은 인종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절대 당신들로부터 떠나지 않는다.  결국, 당신의 피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이  모든것을 다 알아냈다고 생각했을때,  당신이 가장 보통의 일들을 하고 있을때 어떤일이 일어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문자그대로 한국 학생으로부터  너 알아, 미국인!  어떻게 그런식으로 걷는 것을 배웠는지  공격적으로  돌격당할때처럼.    대학은 내게 한국적인 것을 주장하는, 세차게 맹습하는 것을 준비시켜주지 않했다.   그것은  마치 망가진 댐에서 물이 넘처흐르듯 내게 닦쳤다.    나의 부모로 부터 떨어져 있는다는 것이 ,  한국인으로서 의  전반적인 문제를 찿아내서 알아보는 것도 다 완전한 기만과 사기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전심전력으로 한국인으로서 배우는 것을 다시 받아들였다.   나는 대학내의 아시안  클럽에까지 가고,  아시안 학생 조합의 회장이 되었다.   날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이번에는  나의 의문을 더 배우고, 난 나의 백인 친구들을 잃은것 같다.   그들은  나의 이런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내가,  내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인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거의 맞는것 같다.   내가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없다는 것을 아는데 1년이 걸렸다.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다른 한국인을 좋아하지 않을때  내 인생에서 그런 시간을 갖을수 있음이 감사하다.   이런것이  내 자신이 한국인으로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식적으로 날  돌아보게 했다.   이것이 날 한국으로 향하게 하고,  한국의 훌륭한 친절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한국의  여러가지 아름다운 국면 과  한국인들을  배우고 동화하게 되었다.    또 이런것이 날 한국인들도 다른 누구와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중 몇몇으로 부터는 나의 친척같은 관계도 발견했고,  그들은 영원히  가족으로서 나의 마음과 영혼에 남을것이다.

아마도 난 완고한것 같지만,   누군가 내안에 나의 반향을 보게될 그런 사람들과 함께 가야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여정을  채워간다.   지금 난 확실하게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Korean-American

나이가들며, 한국인으로서 , 미국인의 성을 갖고  나의 정체성을 좀더 편안하게 나눌수 있는데,  그 전제(추축)는 다른 방향으로 갔다 – 나는 혼혈인 이였나,  내가 유대인과 결혼했었나,  어떻게 내가 그런 이름을 갖을 수 있었는지,  왜 나의 UPS 배달 노트에 사인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 내 이름은 몇자안되는 짧은 것이 아님)?    고용자들은 의문스러운 눈을 내게 보여주며, 내 생각엔 그들이 가상하기를,  나의 이력서에 기초해서 상상한 내가 아니였다.    나는 그때의 그 시간을 잔잔한 즐거움으로 돌아보지만, 막상 그런일이 일어났을때는 정말로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그 당시의 어린 소녀시절, 그때는 힘들게 돈을 벌어 지불하고 정말로 나 자신으로 사는것이 불편했던것을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10년내에 그녀에게 말할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 그녀에게도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지금까지도 나는 이런 경험에 감사한다.   이런 경험중의 어떤것들은 날  큰 놀라움으로, 전혀 예상치 못하게  했고,  이런경험이 날 강하게 견디게 했고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그  “짱꼴라(중국인)!” 라고 자주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에, 지금은 전 같은 고통으로 안느낀다.   이런  삶의 길에서 어쨌든 한가지  배운것은 비판하는 소리는 절대 그치지 않고 오며, 단지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내게 유우머를 보여준나의 남편에게 난 감사해야 한다(남편은 Korean American 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나의 남편이 갖고 있는  자신만만한 재치가 없지만,  이런 지혜가 이상스러운 사람사이에 잘 해결되는 것을 보았다.   한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가 가게안으로 들어가는데 한남자가 입구의 문을 잡고 “니 하우 마!” 하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G는  조용히 그의 손을 내밀며 미소짓고 말하길 “ 헤이, 안녕하세요, 아저씨, 내 이름은 G 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난 말없이 이런 곤경에 좀 화가나 있는 동안, 난 이 낯선사람이 미소로 답하며, 두 남자들이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곳에서의 인사가 인종간의 비난으로 공격받는 대신 친절한 입장으로 대신했다.   잠시동안, 이 순간이  어떤 긴장되는 것으로 될수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아니것으로 바꼈다.   나는 정말 가치있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는 모두 우리들을 한데 뭉뚱그린 포장된 것에따라 추측한다.   우리는 이것을 문제로 만들거나 아니면, 이것을 기회로 만든다.   진부한 표현 같지만,  이말은 위의 행동에서 증명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같은 민족과 결혼하느것을 선택했고  그것으로 인해 한국 성을 갖게 됐다.  지금은  고민(전제)하는 것이 이렇게 된다 –  추수감사절을 지내야 하나?   어떤 특별한 휴일들을  축하하며 지내야 하나?   내 머리에는, 내  생각에 새해와, 크리스마스와, 하누카(8일간의 유대교 축제일), 세인트 패트릭의 날, 그리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이외는?    이 것이 아마 날 화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내가, 미국식으로 배운외국인으로서의 견해는, 사실, 난  이러한 질문들과 해답을 별로 귀찮게 여기지 않고,유우머로서, 낄낄거리는 목소리로 점점 잘 해결해가고 있다.  난 더 이상 나의 미국적인 것 이나, 아니면 한국적인것을 증명하려고 괴로워하지 않고,  나의 삶의 여정이 정말 다양함을 좋아한다.   나는 진짜 멋있는 얘기를 갖고 있다.   최근의 더 많은 친구들과정말로 우리중에  아무도 똑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배우며,가설, 전제등의 재미있는 교환을 주고 받고 있다.

Korean-American 입양자

한가지 늘 내맘에 걸리는 것은 입양에 관한것이다.   한번은 내가 소개되는데 “여기 내 친구야, 너 알잖니, 내가 네게 입양된 친구가 있다고 얘기 했지?”   난 정말 완전히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이사람이 내 인생에서 오랬동안 알아왔던, 난 이 친구가  날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난 알몸이 된 느낌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하나?   “그래, 그사람이 나다, 난 나의 주홍글씨 A 를 꽤나 잘 감추고 이었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그런식으로 응답 했어야  했다.   그래서 난 새로운 그룹의 친구를 사귀것에  신중하게 됐고, 그런것에 문제가 별로없는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어디든 내가 맞는 곳을 찾아다니고, 나는  나처럼 입양된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는데 습관이 되어 자랐다.   이러함으로 나는 굳이 항상 설명을 한해도 되는 편한함이 주어졌다.   지금은 한국의 성을 갖고, 더 이상 나의 입양사실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이런것이  중요한지 아닌지 난 다시한번  자신을 놓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사실을 더 이상 얘기하지않은것이 날 좀더 덜 복잡한 사람으로 만들까, 문제가 될까?   내가 입양에 관해 일하게 되면서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고객에게, 나도 입양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까?  이런것이 문제가 될까?   난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정착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입양된 사람이 “전문적인 입양” 에 일하고 있음을 매우 자랑으로 여긴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이일을 하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잘 모르겠다.   뭔가 내가 느끼는 것은 항상 누군가  나의 입양으로 인한 바보같은 추측과 호기심으로  많은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여전히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는 것에 고심하고 있다.   이 모든 살아온 여정을 전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나의 20대가 다시 찾아왔다.   단지 이번에는  다음 세대를 생각 해야 한다.   나의 입양사실이 나의 자식들에게 어떤 문제의 씨앗이 될지,  그애들의 친구에게도 영향이 미칠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아무런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   영광스럽지 못한 가족사 숙제를 준다면, 정말 재미있기를 바라고,  그애들의 친구 가족사보다는  별로 좋지 않겠지.    입양되었다는 사실로, 그들이 어쩌면 알고있고, 믿고있는  입양으로 인해 나의 아이들이 친구를 잘 만들수 있을까, 아니면 친구를 잃을까?    아무 문제 없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신들의 장점으로 서로를 판단하길 바라고,  그들의 살아온 일대기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것이 하등  문제가 될까?   왜 이것들이 문제가되지?   아니, 문제가 되면 안된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입양되었다는 것이 무덤에 묻듯이 내게서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내안에 아시안으로서 평화로이 받아지도록 노력했고, 그런 반영된 이미지를 쫒느라고 엄청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엮시 좋든 싫든, 우리나라는  입양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보다 인종에 대해서 얘기하는편이 훨씬 더 편하다 – 세계적인 언어같다.   다민족문화의 쟁점이 다시 부각되고, 점점 더 많은 우리 같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입양에 관한부분에 대한것은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조금 부족한” 이런 이미지를 느끼고, 왜냐면, 나를 낳아준 부모, 가족과 성장하지 않았기에,  그러므로  무언가 영원히 내게 잠재하는  정신적인 상처를 줄것이다.

나는 믿는다.    내가 입양된것에 대해서, 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느지에 관해,   너그럽고 편안하게 마음먹을 것이라고.      이 모든 입양으로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스스로 이뤄낼수 있게 돼서,  내겐 정말 대단한 은혜를 받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도전은 계속 바뀌며, 발전된다.   여전히, 다양성의 가치, 공동사회 그리고 이 가치를 이해하려는 것이  절대적인 필수임을 느끼고,  내가 누구이고, 또 내 아이들에게 이런 교훈을  전해줄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아이들이 여러층의 친구들과 함께 자라날수 있기를 자랑스럽게 바라고, 기대한다.   정말  모든 인종과 여러가지 얘기를 가진 사람들과,  여러 종교, 성별, 사회적 계층, 이 모든것이 나와 내 작은 가족에게  친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우연하게도 내아들들은 완전한 한국인이다, 그런데,  그애들의 엄마의 순조롭지않은 인생이 그들의 미래에 보탬이 되고, 그들을 정말로 편견없이 대해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그들이 직접 인간성에 대해서 알수 있도록.   또 하나의 바램은 그들이 한국인이란 정체성뿐만아니라, 미국인도 포용하고, 어느계층도 포용할수 있기를 바란다.   정체성의 개념은 항상 바뀌는 것을 안다.   지금 나의 정체성이  내가 50대가 됐을때 다르게 변해있기를 바란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특히 지각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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