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준 엄마 part II –비탄, 상실

성인으로서 정말 오랫동안, 부모가 그들 자녀들이 그의/그녀의  낳아준 엄마에 대해 슬프게 그리워 하는 것을 함께 공감하고 느낀다는 것을 들었을때, 혼미하게 어리둥절했다.   임상적으로 그런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 개념은 이해가 되지만,  난 아직도 내 자신 심오한 깊은 가슴속에는 그 상실과 슬퍼하는 개념에 대해 무감각한 느낌이다.

난 항상, 나의 생모와 재회할것이라고 말했다, 왜냐면 날 낳아주고, 날 찾고 있었던 이 여인을 다시 알기시작했고, 이 일이 잘 진행되고 발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정말 내가 그녀를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내 가슴속 깊숙히 자리잡고 현실로 닦아오고,  그녀를 내 자아 의식으로 느낄때마다 이런 부분이 아픔으로 온다.    이것이 늘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그녀가 나의 가장 의미심장한 영혼을 마음속으로부터 친근하게 알고 있는 것을 느꼈을때의 그 순간을  난 생생하게 기억한다.   일이 없던날 나의 생모가 날 찾아 방문했을 때는 난 한국을 방문중인 다른 입양자 가족들과 호텔의 방에서 앉아 있었다.   투어 가이드였던,  K는  남아서 친절히 통역을 도와주었다.   비록 내가 한국말을 할 수 있었지만, 나를 낳아준 엄마의 출현은  아무 대화도 할 수 없을것같은  느낌이었다.   K를 알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이었고, 그녀는  우리를 신뢰로 정중히, 독특하게 도와주었는데,  그것이 제일 처음으로 내 가슴에 나의 생모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K는 그냥 말을 통역해 주는 것을 떠나 1970 년대  한국여성의 삶의 선생이었다.   그녀 역시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나의 생모가 날 잃고 고통받았던 것도 낱낱히 알게됐다.    생모와의 만남 전에,  K는 그당시 한국은 부모가 이혼할 경우, 자녀들은 아버지의 보호가 되고, 어머니는 만날 수 있는 권한도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그녀 아이들과의 연락이 힘들었고,  지금은 그들이 그녀의 인생으로 돌아온, 이 아이들을 성장한 성인으로서 알고자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극복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 아이들의 삶속의 한 부분을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나와 함께 공유하며 얘기했다.   이 모든 얘기가 나로 하여금, 이 여인과 같은 상황에 처한,  나의 생모를 다시 만나게 했다.

그 당시, 나는 약혼을 하고,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의 생모와 나는 내 약혼자 가족의 사진을 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의 결혼계획에 대해 물었다.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니까, 나의 생모는  새로 생길  시댁가족들과의 관계, 또 나의 무지한 한국의 문화, 결혼 풍습등에 접하게 될 거대한 차이에 대해  역력히 걱정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평소대로,  가볍게 농담하듯이  그들, 시댁의 승낙에 대한 나의 염려, 그리고  웃으면서 계속, 내 인생에서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하려는, 끊임 없이 버둥거리는  나의욕망에 대해 말했다.   이런 나의 행동은 서투른 자기비난 같은 농담을 하려고 한것 같다.    나의 생모는 자기 침대 모서리에 기대서 아주 조용해 말하길, “너는 항상 그런 식이였다.”   그녀의 말은 아주 간단했고,  무언가 특유의 모든 엄마들이 그들 자녀에 대해 기억하는것이것을 상기 시키는 경구 였다.   나를 신생아로서, 그리고3살 박이로서 기억하고 있는 이 여인으로 부터 듣는 이 말은, 그녀가  나의 가슴과 어린시절로 날 데려가는듯 느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정말 아팠고,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난 한번도 그런 말을, 강하게…확실히 알고있는 목소리로, 나의 영혼에 의식되는 사랑스런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평온함이었고,  이 순간 왜 그 많은 입양자들이 친부모를 찾으려하는지 알게 되었다.   너에게 생명을 준 이 사람으로 부터 알게되는 것.

이런 재회가 나의 생모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경험일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느끼고  그 만남을 끝내고 나왔다.  그녀는 그 많은 시간동안 나의 작은 영혼을 붙잡고, 또 그것을 찾으며 지냈다.   난 그녀가 이렇게 다 자란 소녀의 존재를 보았을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난 정말 너무 슬펐고, 내가 전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음을 감지했다.   그동안 죽 내 머리속에 잠재해 있던,  내 잠재의식속에 존재하던 그녀의 평범한 인식, 나의 마음속의 고뇌, 그리고 이 모든 의문들이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그녀가 갖고 이었고, 인지하고 있었던 그런 것들이.   순간적으로, 그녀는  내가 이렇게 태어났고, 나의 무언가 자연스러운 내 방식에 대해 확인했다.   이 모든것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아직도 날 한숨짓게하고, 가슴이 아프다.   아아, 바로 이런것이 슬퍼하는, 애도의 느낌이 겠구나.   난 그 순간  기어가서, 그녀의 팔을 잡고, 그냥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녀가 숨쉬고 있듯이 나도 같은 순간에 함께 숨을 쉬고 싶었다.  전에는 한번도 이런것을 원하지 않았었다.

난 이제서야 나의 생모의 상실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참기 힘든 아픔을 통해 배움으로서, 이런일이 나에게 매번 교훈을 주었고, 지금 우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순간들을 빠르게 변화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동안 주기적으로 생모에게 전화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그녀에게 딸로서 해 주지 못했던 것을 해 드리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때때로 나의 생각으로 가득차있고, 이런것이 슬픔과, 무언가 부족함과, 기쁨과 교차되면서 그녀가 아직도 이곳에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아름다운 장미빛의 병처럼 사실이면 좋겠지만,  아직 다 완전하지는 않다.   이것이 지금 처한 상황이다.   한국말의 실력도 그렇고, 아직 난 생모와의 관계가  정말 자연스럽고,  완전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절대로 가질 수 없을것 같다.   그동안 줄곳 몇년동안 내가 바라는 평범한 꿈은 어슴푸레하나, 무엇이든 지금 내가 갖고있는 것들이다.   나의 생모는 아직 내겐 완전한 한 사람으로서 인지되지 않고 있다.   그녀는 나의 관심을 갖었고, 내가 누구든 그들 자신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처럼,  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되게 도와 주었다.   이런 모든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든 나의 질문에 답을 주었고, 앞으로도 이런 의문은 계속 오길될 것이다.   아직도 공유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얘기들이 궁금하다 –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 노래, 책, 기도문.   무엇이 그녀를 웃음짓게 할까, 누가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이지, 그녀는 어떤 정치관을 갖고 있는지, 어떤것이 그녀의 열정인지, 또 그녀가 자라면서 무엇이 되기를 바랐는지.   난 그녀가 그녀 아들에게는 어떤 엄마였는지, 또 내게는 어떠한 엄마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다.   이런것들에 대한 나의 의문은 사소한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왜나면 영원히 좁힐 수 없는 문화의 차이로 하여금 이런 질문들은 답을 할 수 없다.   그녀는 한국인이고, 난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감지한 그녀는, 친절한 사람이고, 충실한 카톨릭 신자이고, 열심히 일하고, 무엇이든 거의 불평하지 않고, 진솔하고 정직하게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완강하고, 무엇이든 남에게 얘기하지 않고, 자신의 가슴속에 꼭 가지고 있다.   그녀는 무엇이든 계속해서 기억하고, 경이로워하고 분명히 알수 있게 한다.  그녀는 절대 어느것이든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히 말하길, 무엇이든 내게 부탁하지 않을거라고,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나의 미국 부모님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고, 나의 어린시절에 관해서 알고 싶지 않다고 하며, 내가 어렷을 때의 사진 한장이라도 보여달라는 부탁도 절대 않했다.   그 많은 세월을 잊고 산것이 그녀를 슬프게 만들은 반면, 그녀는 지금 나 대로의 나를 알게 된것을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하는듯 했다.   우리의 이 관계에 어떤 연관의 끈이 없는것 같다.  나는 우리둘 모두에게 그 만남이후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워졌다고 느끼고 있다.   난 내가 그녀보다  더 얻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   이런 이유로 모든것이  지금 있는 이 상태로 난 괜찮고, 이런것들이 나 나름대로의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나의 생모가 갖고 있는 모든 특성이, 내게서도 같은 자질로 나타남을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것은 나의 어떤 부분이 그녀이며, 이것이 나의 생각과 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이것을 어떻게 내게 받아드려야 할지 알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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