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읽고, 쓰고, 셈하기!

요즘  들은바에 의하면, 지금 한국에서 – 낙하산 아이들 이라 불리우는 현상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잘사는 가정이며, 그들의 아이들이 아주 어리게는 초등학생 나이에, 그들을 보살펴줄 의사가 있는 미국 가정에 보내져 공부시키는데,  더 중요한것은, 이들이 미국사람과 똑 같이 말할 수 있도록 공부시키는 것이다.   들어가는 비용이 한해에 숙식비만 6만달러 이상이고,  정규 과목이외에, 메디칼 케어, 휴가는 별도이다.   이렇게 돈을 받는 만큼, 아이를 보내는 부모는,”집주인” 이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와 똑같이 대해주도록 원한다 – 즉 그들 자신의 아이와 똑 같이 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그들이 음악과 스포츠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준다.   이런것이 나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하는데, 아마도 이런이유로 이 조그만 경제대국의 나라가 계속 국제입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런 문화적 불일치가 동서양이 만나는 충돌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불명예 한국이 국제입양을 그만두는 것이, 어쩌면 어떤 중요성이나, 목표를 잃은 것 같다.   이런 국제입양의 할당이 계속해 떨어지는 반면,  많은 어린이들을 입양시키는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확신은 없다.   몇해전, 한국의 임산모를 위한 집에서 입양을 도와주고 있는 여성과 이야기한적이 있다.   그들중 입양을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여성중, 대부분은 그들의 아기를 국내입양보다는 국제입양을 선호하고 있었다.   왜?  첫째는, 그들은 자신의 아기들이 좀더 낳은 생활을 하기 바라고, 해외에 보내져, 영어도 잘 할 수 있고, 또 해외의 교육이 더 좋다고 믿고 있었다.   두번째는, 미국의 부모들은, 그들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나중에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협조해준다고 믿고있었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한국에 입양되는 것보다, 해외로 가면, 아이를 볼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거라고 믿었다.  아이러닉 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같은 미국입양자들이 멋있는 영어를 하고, 미국 스타일로, 으스대며, 대학 교육이나 그보다 더 높은 디그리를 갖고 한국에 다시 가도, 아직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좌절하는지 물어보는 것을 듣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서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입양기관 중의 하나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와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  이 복지사는 영어를 아주 잘하고,  입양자들의 지난 10년간 이상의 많은 자료를 모아서, 많은 입양자를 도와 주었다.   그녀는 아주 열심히 그들이 알고싶어하는 것들을 정성으로 부지런히, 그녀가 들은것들을 입양자들에게 알려주며 도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만은,  정서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려하고, 우리들의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우리의 지난 과거를 찾는데 의의가 있음을 알고 있는줄 알았는데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우리가 혼자있는 시간이 있을때, 그녀는 물었다.   “왜?, 왜 이렇게 많은 입양인이 다시 뿌리를 찾으려 오는 거지?”   이런 질문을 받았을때 나의 놀라움을 상상해 보시라.  어설픈 나의 한국어로,  만약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면,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는 아주 간단한 의미를 설명해 주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유리한 점, 특권, 강한 힘등 내가 보는 것과는 정 반대로만 보고 있었다.   그이후 몇년간 죽, 이런 것에 대한 진실한 해답을 얻을 수 없는 무능이, 계속해서 충돌하는 불일치를 만들고 있는 것에 놀라, 괴로움에 빠져있다.   만약 내가 나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고, 내가 아이를 해외에 보내는 것이,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어, 아이를 입양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의 질문을 떠나서, 난 이런 개념에 고민하고 있다.

지금, 이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잘 못되는 것을 보았다.  이 홈스테이 를 해 오던 가족들중, 원망하는 가족도 있는데, 그들 자신의 아이들이 불만을 토로 한다, 왜냐면 이 아이들의 생활이, 이 가정에 충분할 만큼의 돈을 가져다 주는 다른 낙하산 아이들로 인하여,  여러가지 변화와, 양보, 또 그들 부모로 부터 충분한 보살핌을 못받으니까.   그들의 침실은 이 다른 아이에게 주어야한다.   이 새로온 아이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정말 가족다운 가족을 못 만들고 있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부지런함이, 돈이나, 바이얼린, 피아노렛슨, 본토인 같이 말하는 영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 무엇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 어딘가 잘못 옮겨놓은듯한 이런 아이들은 보았다 – 그들의 가족이 여기 없으니, 완전한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도 이아이들를 제처놓고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있고, 또 한국과 더 이상 연락하지도 않는 그런 아이들.   그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나라도, 또 진실한 가정도 없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 같다.   난 내 자신에 대해 좀더 느끼게됨을 발견했다…. 그들은 거의 나와 비슷한것 같고, 나도 그들과 닮은것 같은.     궁금하다, 그들이 특권이 있다고 느낄까?    그들은 감사하다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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