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주일

어느 슬기로운 여인이 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  내가 어떻게  엄마와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해  듣고 있으면, 그녀는 jukebox를 연상시킨다고 내게 말했다.   한순간은 Aretha Franklin을 생각나게하고, 또 다른 순간은 Josh Groban 에서 부터 Van Morrision 까지……   정말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난 생각했다.  난 잠재되어 있는 순간들을 깨어버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 지금 이 순간, 다음은 나의 엄마에 대해 바르게  관찰하려는 생각, 그다음엔 나의 남동생에 대하여 등등.   그래, 거의 맞는것 같다.   이런 상념에 빠지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이지만, 그러지 않은것보다 날 진정시킨다.

Jetlag이 사라져감에, 나의 미국요리가 더 입에맞는듯 싶다.   엄마는 나의 chicken soup을 좋아했다, 그래서 난  그녀를 위해 큰냄비가득 치킨 숩을 만들었다.   그리고 요리책에서 모든 종류의 숩 요리법을 샅샅이 찾기 시작했다.  ( 전형적인 과잉 목적 달성자!)   그녀는 건강상의 문제로 한꺼번에 많은량의 식사를 못했고, soup이 가장 적절한 선택인듯 했다.   그녀는 밥과, 고추장 그리고 김만으로도 괜찮은 듯 했고, 아직 김치는 요구하지 않으셨다.   K-cup 커피 머신은 아주 잘 사용했고, 나의 부엌 싱크의 쓰레기 처리장치는 아주 큰 매력을 자아내게 했다.   TV는 항상 계속해서 켜있었다.   나의 친가족은 TV를 갖고있지 않아서, 미국에서 한국 TV를 보는 것이 정말 큰 열광이었다.   그들은 어쨋든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   나의 남동생은 엄마를 위하여 최근 한국 드라마를 찾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난 그가 컴퓨터를 잘 사용하는 것에 기뻤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다시 돌아갈때까지도 분별하지 못했는데, 그가 나의 모든 자료들,  발표자료들, 연구집회, 집필한 자료들등 모든 것이 다 지워져 버린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단지 자료들이니 별로 중요하지 않겠죠, 맞지요?

방문한지 단지 2틀간인데, 거의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겨우 걷는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 것이 쉽지않은,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지연되는 책임임을 어느 엄마도 원치 않는 순간이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전혀 계획이 없는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산을 옮기는 듯한 힘든 기분이다.    결국,  이렇게 나가는 것이 나의 동생과 나와의 기분좋은 의식이 되었다.   나의 아이들은 집을 나서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그들은 등에 업히기도 했고, 그들의 가방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서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아침이면 나의반복되는  집안일을 하는데, 나의 동생이 신기해하며 쳐다본다.   그는 세탁기로 빨래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 그는 모든것을 질문하고, 그가 가능한 많이 할수 있는 만큼 영어연습을  위해 많은 질문을했다.   그가 정말  진지하게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관심인는척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이 삼개월간의 기간이,  계속 날 위압하리라는 것이 예상된다.   그들이  언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아도 반응이 없다.   단지, 얼마후에 난 그들이 여분의 돈을 모두 비행기 티켓에 사용한것을 알았다.   그들의 무계획적인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달동안만 휴가를 냈다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이 심심해 할까봐 걱정이었다.   무엇을 더 물어볼수 있을까?   방금 그들은 만났는데, 어떻게 감히 누구에게든 그들의 방문이, 귀찮게 방문하여 질리게 했다고  말할수 있을까?  난 그들의  긴 방문기간에 대한 불안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지역에서 오신 손님과  무엇을 합니까?   쇼핑에 데리고 갔다.  큰 자동차로 겨우 짧은시간동안, 우리는 아울렛 쇼핑센터에 갔다.   나의 동생은 그가 갖고있는 다른 청바지에 새 Levis 501 jean을 추가해 즐거워했다.   난  사실 그들의 경제사정을 알게되었고, 그들의 일상이  매일 매일 여분이나, 아니면  호화스러운것과는 다른 삶의 도전인 생활이다.   변변치않은  생활이다.   그래서, 이모든 방문이 그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큰 시도였다.   그들이 다시 한국에 되돌아 가서,  돈을 절약하기 위하여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는 더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   아마도 우리 집의 반밖에 안되는, 난 그집을  영원히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피할수 없는 질문을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   그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는가, 그리고 만약 내가 돕겠다고 하면, 그들은 도움을 받을까?

이번주의 하일라이트중의 하나는 나의 남편이였다.   이 세상에 모든 이런 상황을 잘 견디어내는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지난날의 남자친구들중 그누구도 이런 상황을 나의 남편처럼 쉽게, 존경과, 유우머 그리고 사랑으로 잘 해결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의 수궁(천문 12궁중의 하나) 싸인대로, 그는 침착하고,  조용하고,  완전히 자연스럽게 잘 지냈다.   난 계속 그에게 엄마와 동생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나보다 사람들의  성격을 잘 판단할줄알고,  대부분 늘 확실하게 맞았다.   그는 그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받았다.   그는 나의 남동생을 좋아했다.   나도 나의 동생과의 시간이 좀더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한국말과 영어로 별 문제없이 얘기했다.   우리의 감정적인 연관이 좀 느슨해지기 시작하니,  나에게 남동생이 생긴 것이 흥미있었다.   그는 평범하게, 진실로, 존경하며, 빈정거림없이 이야기 한다.

나의 엄마와 함께있는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가장 적절한 설명은?   그것은 나의 피부가 안팍이 바뀌는듯한 참을수 없는 느낌이었다.   모든 접촉이나 응시하는 것이 나의 감정이 궤도속에 던져진, 그래서 난  모든것이 혼란스러웠다.   처음의 데이트에서 느끼는 어색한,  나의 몸이 우주의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으면, 나의 온몸이 쭈뼛한다.   난 애정이 결여되지 않았다.  나의 아이들을 이뻐하고 가까이하며, 나는  큰 곰같은 포옹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런 종류의 접촉은?   이것이 무엇이었나?   이런 것이 뭔가 내가 기억하고있는 감정은 아닌것이었다.   맨처음의 데이트처럼, 난 나의 팔의 긴장을 풀수가 없었고, 정말 무겁게 느꼈고…. 그리고  손에선  땀이 났고….그녀가 알아차렸을까, 또 그녀가 나의 긴장감을 눈치챘을까?

그녀는 내가 행복하면, 자기도 그렇다면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물론 난 그 질문을 빨리 떨처버리려고, “네, 난 행복하니까 날 걱정하지 말아요.” 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나에 관한 여러가지 행복의 정도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수많은 한국말을 모르고, 설혹 내가 안다해도, 무어라고 말해야 하나?   그녀는 내가 정말 완전히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을 알아야 했다.   그 질문은 여러번 다른 방식으로 내게 했다 – 네 생일에 무엇을 하고 싶니,  왜 넌 이 생일은 안지내느냐 ( 난 두개의 생일이 있는데, 하나는 법적으로 만든 것과, 다른 하나는 진짜 내가 태어난 날이다),  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게 말을 안하냐며 질문을 했다.   엄마는 몰아부치지는 않았지만, 굽히지 않고 어떻게든 나의 답을 얻을줄도 알고 있는듯했다.   그녀는 내가 나의 아이들을 임신했을때, 꿈을 꾸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날 임신했을때,  밝은 금과 은에 관련된 상징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난 그런 꿈같은 것은 없었다.   난 농담조로 나의 대부분의 꿈들은 좋지않은  것이었다고 하자, 그녀는 심각하게  “ 비록 나쁜꿈들도 다 나쁜것은 아니다, 모든것이 다 네가 어떻게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매번 그녀가 나의 옆에 앉을려하면, 난 좌불안석이다.   그녀는 날 만지려하고, 나의 팔에 있는 상처를 세심히 보려한다…. 그러나 난 참을 수 없고, 그래서 일어나 가버린다.   그녀는 서서, 내가 다림질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다리미가 무거운데, 날 도와주고 싶다고 했지만, 그녀는 어떻게 하는지 알지못했다.   사실은 난 그녀가 그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난 그녀가 날위해 아무것도 하는것을 원하지 않았다.   도와준다고 할때마다 나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고  손이 나온다.  나의 손을 볼수 없고, 어린아이의 손을 보는 듯한 과거의 회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나의 양어머니가 나에게 가까이하려할때, 그녀가 얼마나 기가 질렸을지를 알게 되었다.   난 이런 감정을 누그릴수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더 편안하지도 않다.  난 나의 엄마를 멀리하고 싶진 않지만,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난 그녀를 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난 아파트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머리를 비스듬히 곁눈질로, 그녀가 앉기를 기다려서,  이번엔 내편에서 그녀를 볼수 있도록했다.   그녀는 couch에서 몇번 잠들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잠자는 모습이, 우린 정말 닮은꼴이였다.  언젠가  훗날 나의 얼굴은 그녀의 피곤한 얼굴과 비슷할 것이다.

일요일, 휴식의 날

이 방문기간중 하느님, 신에대한 것이 정말 많았다.  내말이 솔직하지않게 들렸다면 사과한다, 그런데 몹시 지나치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많은 교회를  경험했는지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온다.   난 Reformed 교회를 다닌다.   난 이 교회가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간단해서 마음에 든다.   일요일 오후는 엄마와 나의 동생과 함께 그들의 한국 성당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전에 카톨릭 신자로서, 미사예배가 느린것을 불평한적이 있는데,  뒤돌아 보니 아직도  미사가 아름다운 것을 알았다.   정말 나쁘지 않았다.   교회의 내부는 이뻤고,  성수를 담는  두개의 유리그릇과, 그것들 사이의 앞면엔 아름다운 대리석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노래 잘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한사람도 노래 못부르는 사람이 없다 –  아주 적은 권유만으로도 – 나가서 한곡이나 두곡을 쉽게 부른다.  난 그런 타고난 경향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이런 이유로, 미사는 아름다웠고, 찬송도 정말 듣기 좋았고, 엄마는 늘 성당 복도를  콧노래를 찬송하면서 거의 춤추듯 내려갔다.    그래,  맞다, 그녀는 부엌에서도 콧노래를 부른다.

이 모든일이 “동화의 나라” 같이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  일주일 만에 우리는 첫번째의 의견차에 부딪혔고, 요약하자면 부엌에 두 여자가 있으므로서 –  두 여자가 부엌에 있는 것은 항상 좋지 않은 아이디어 이다. 아시안 마켓의 시금치는 긴 잎과, 줄기 그리고 뿌리가 있다.  난 항상 잎사귀를 잘라서, 잎만 빼고 나머지는 버린다.  왜냐면, 이번주초에 이미 야채를 사다 놓았고,  대부분의 버린 것들은 물렁해지고, 시들어서 잘라서 버린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혼비백산해서, 그많은 것을 버린다고 하시며, 나머지 부분을 남겨서 그녀가 다음에 요리할 때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사과를 자르고 나서, 조금밖에 버리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계속 남은 음식을  다음에 먹을 수도 있으니까  버리지 말라고 주장하신다.   아이들을 갖고난이래, 헤이하게 남은 음식을 버린 양에 대하여, 좀 죄의식을 느껴서, 난 이 제안을  대체적으로 잘 받아들였다.  과거에는, 얼마나 오래동안 음식들을 보관하고, 거의 모든 것을 먹는것에 대해 흡족했었다.   그러나 아이들로 인해 모든것이 싱싱하지 않으면 걱정으로 과대망상이 된다.  그래서 많은량의 음식이 낭비가 되었다.

피곤한 것에, 번역하는 어려움에, 오버타임으로 일하는 것등으로 나의 귀찮음을 변명하고 싶은데, 이 일주일이 이미 한달처럼 느껴졌고, 가장 바라는 것은 평상시의 저녁시간에 저녁을 먹기를 바라는데, 이것조차 매일 큰일치루듯 도전이다.   난 항상 계획보다 늦는듯하다.   내가 버리려는 음식과, 또 그녀는 나보고 싱싱하지 않은 음식들을 나중에 다시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봉지에 넣어 두라며, 화를 내시는 엄마로 인하여 난 화가 났다.   난 간단히 다음번에 엄마가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이 터무니없는 일이 나의 죄였고, 그녀는 나의 남동생을 끌어들였으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걸어나갔다.   그리고 두 여자는 의견이 맞지 않은채 남겨지고, 동시에  지독히 화가나 있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시금치를 다 만든후, 엄마가 와서 말하길, 내가 시금치를 너무 오래 삶았다고하며,  전혀 안먹겠다고하였다.   시금치를 적절히 잘 요리하는 것을 배운후, 난 엄마를 잘 바라볼수 없었고, 아무말도 안했다.   그녀는 내가 화가난 것을 알고, 마침내 조용히, 침착하게 말하길 “ 나 한테 화내지 마라, 내가 의미하는 말은, 내가 뭐라하든 네가 듣기 싫으면, 들을 필요가 없다” 하셨다.   그녀가 내게 하는 말이  날 교묘히 다루는 것도 아니고,  바르게 처신하는 것도 아닌 것같아, 난 더 참담한 기분이였다.  그녀가 한 말은  더도,  덜도 아닌, 그말 그대로의 뜻이였다 –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그뿐이다.   이 때쯤, George가 번역을 해주었다, 난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솜뭉치가 나의 귀에 박힌것같고, 나의 마음은 감각이 없는 느낌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George에게 말하길 “내가 말한 것을 전부다는 얘기하지 마라.”  하셨다.   나의 남동생은 이런것이 정말 우습다고 생각했다.  한국말로 얘기하는 것을, 난 들을수도 있고, 못들을수도있다.   난, 나의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나의 남동생보다 더 어렵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그녀의 얼굴을 덜 쳐다보려해서일거다.  어떤이가  말할때  실제로 그들을 쳐다보면, 훨씬 더 잘 이해가 된다.   그녀가  무엇이든 진짜 의미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그녀에 대한 이런 행동을 그만두어야한다.   난 그녀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글을 끝내기에 앞서, 지금까지 우리가  부닥친 몇개의 문화적 뉴앙스는:                               방귀를 뀌는 것?   별로 대수롭지 않은일….. 그래서 그런일이 자주 있었음!   나의 아들들은 이런 것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함!                                                                                                                                             한국인들은  모든것에 좀약을 넣음, 그래서 우리집은 더 이상 집 같은 냄새가 아님 – 행복하지 않음.   샤워하는 것을 처음엔 당황하는데, 나중엔  상세히 긴시간동안 즐김.                                                       집에 있는 큰 목욕수건 사용하는 것에, 즉각 싫다고 반응함…  그래서 우리가 갖고있는 bath sheets 이 거의 웃음거리였다.   난 지금 밝은 오렌지색  핸드타올들을  소장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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