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방문 6번째주에돌입…. 모든것을 잘 통제,관리하려 노력중

유일무이한 – 오직 하나밖에 없고,  똑같거나 비슷한것이 없는것…..난 항상 이 단어를 아주 싫어했고, 이 것은 정말 아주 외로운 말이다.   이말은 섬처럼 고립된 느낌을 갖게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홀로 고립된처지가 되어선 안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느 누구와 닮은점도, 비슷한점 도없는  그런 독특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데 엄마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녀와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은 나의  미래의 모습을 거울을 보듯 보여주었고, 이런 모습이 정말 날 놀라게 했다.

이 방문여정이  거의 반으로 접어들면서,  시인을 해야만 하는 것은,  내입에서 나오려는 좋지않은 말들을 참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결점이 있는, 않좋은 사람들을 내가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난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와 남동생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나와 좀더 비슷했으면 하고 바라는 그 자체가 정말 부당하다.   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들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비록 내가 그들에게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듯 하다.    그들이 나의 감정, 분노, 슬픔, 좌절등을 설령 감지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정작 할말이 뭐가 있겠는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쌓여있었다.   현재까지도, 남동생은 그가 영어를 더 배우겠다는 계획을 얘기했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난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  그가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   언젠가 미국에 다시와서 현재의 상황보다 더 향상되게 하는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그가 다시  한국에 가기전에 영어를 좀더 배우게 할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할지,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그에게 전했는데,  그는 나의 말문을 막고, “ 아니,  난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그는 책(사전종류의)을 가져왔는데,  그가 한국에 돌아가면  여러가지가 달라질거라고 믿고 있었다.    내 생각은?   허튼소리다.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 것을 안다.    난 그를 재촉했다.  그는 지금 이곳 미국에 있으니까,  이것을 기회로 비록 한달간일지라도  적당한 영어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그에게 이런 기회를 잡아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싫다고 했다.   그는 내가 수업료를 내는 것을 원치않았고, 괜찮다고 했다.   난 그의 알량한 자존심에 화가 났고, 이런 그의 행동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결여되어서 라고 받아들였다.  이런 그의 행동이 있고부터 그가 좋게 보여지지 않았다.    우리의 아침은 매일  그의 친구들로부터오는, 일이 없다는 불평의 이메일로 시작된다.    마침내 이런 일이 있고 며칠후, 난 동생에게 물었다,  그들이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손처도 – 야채가게 점원이라던가, 택시운전수, 배달원등등… 할수있는 일은 많다고,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난 다시 재촉했다 – 분명히 어딘가에 꼭 일자리가 있을거다.   만약 건설업이 보장이 없다면,  반드시 어딘가에 어떤일이 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가 한국에 되돌아가면 걱정을 할 것이다.   내 생각으론 이것이 정말 절박한 상황이다.   만약 제로 달러와 십 달러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왜 십달러를 위하여 일할 노력을 안하는 것인가?   어떤 일이든 해야하겠지?   나의 실망감이 치솟고, 침묵은 깊어만 갔다.   우리는 난처한 입장의 곤경에 있었다.   난 전형적인 미국식 “할수 있다”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로 불쾌한 태도로.

내가 유일하게 탁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George 였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말하면,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나에대한 조망을 나의 남동생의 통찰로 비추어 알려주었다.   그런후,  남동생이 본  나의 전부는 내가 입양되어 한국을 빠져나온 행운아였다는것.   동기부여가 만족되었다는것.   남동생은  가진것없는, 아마 형편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정말 난 나의 엄마가 남동생에게 어떤 엄마였는지 알수가 없다.  그는 억압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분노에 차고, 부재중인 아버지와 엄마의 보호속에 자랐다.   그리고,  나도 그 가정에서 자랄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이런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다시 “~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만약 내가 엄마에게 돌아갔었다면, 난 남동생의 학대하고, 인정없는 아버지밑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의붓아버지가 됬을 것이다.   난 아마 대학교육도 못 받았을 것이고,  아마 또 다른 학대하는 자와 결혼했을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을 통계가 보여줌.   난 여전히 나자신일테고,  살아가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 일했겠지.   순식간에 George는 나의 있음직한 인생을 보여주었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할수 있었다.   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난 잘 해처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것이 아이를 잘 훈련시킨다고 찰싹 찰싹 때리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내가 그당시 한국에 있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에 대한,  미지의것에 대해  한동안 더 생각에 잠겼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못한다.  이런것이 정말로 내겐 정상이 아닌, 상상할 수 없는 동떨어진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다 잊기로 했다.   남동생을 재촉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 마음을 걸리게 한다.   변하지 않은 것은 계속 몇주간 그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고,  난 계속 그들과 아무 상관없는 별난사람으로 남아있다.   난 아직도 그들에게 아웃사이더이다.   엄마와 남동생은 친밀한 관계를 갖고있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사이이며, 그 둘만의 가족이다.   그들의 대화에 난 아직도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요리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것도 나를 제외하고 이루어진다.    무언지 모르는 고기에 대한 그들의 지각은  그들 둘만이 곰곰히 생각하고 얘기한다.   “이거 생선같은데”,  아냐, 이거 닭고기야”…. 하면서 한마디도 내게 물어보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앉아,  매일 밤 무뚝뚝하고, 조용히 음식에 관해, 아이들에 관해, 나에 관해서 둘이 얘기하는데,  나의 바램이나 의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다.   그리고 그놈의 케첩으로 인한 사건.   모욕을 당하면 안되는데, 그랬다.   부엌에서  한시간 정도 후에 엷게 저민 커틀렛, 달걀, 밀가루, 그리고 파스타와 샐러드…..그들은 케첩을 가지고 나왔다.   정말?   먹어보지도 않고,  그들은 이 빨간 케첩없이는 먹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핫 소스를 갖고왔다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케첩병이 날 화나게 했다.   그들의 대화에 함께하려는 노력이 헛되이,  내꼴이 미치광이 처럼,  손이 사방으로 가고, 영어로 내뱉는 말의 문장이 완전히 횡설수설이었다.   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얘기하는것 이 더 날 화나게 했다.   “나한테 얘기해!”  난 그들에게 요구했다,  “ 둘이 서로 묻지만 말고, 내게 말하고, 물어보라구…”   그들은 창백하고, 무표정하게 바라보면서,  모두 다 좋고, 괜찮다고 말했다.   게다가, 엄마는  이음식이 배탈을 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두번째로 음식을 더 갖고왔다.   난 그녀를 말리려 했는데, 엄마는 고집을 부렸다.   대단하시군,   고통을 감내하는 순교자엄마께서 그녀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식의 음식을 잡수시는 꼴이다.   난 참을수가 없었다.    그들은 날 숨막히게 한다.   질식할것 같고, 숨조차 쉬기 어려워서, 그곳을 빠져나와 …. 나의 실망과 좌절이 존재했던  암울했던 곳, 나만의 조용한 곳으로 갔다.   나는 그들과 다른 묘한사람이었다.   난 그녀의 딸이나, 자매도 아니었다.   이곳 나의 집에서,  누군가 함께 그들에게 음식과,  따뜻한 잠잘곳을 제공해주는 존재였다.     그들은 정말로 나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아낸것이 없다.   사실, 아마 그들은 내가 성질을 잘내고, 여기저기 온통 발을 구르며 다니는 다큰 영원한 어린아이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의 지난시절,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나의 지난 생활은 어떠했는지 같은것에 대하여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난 엄마가 말은 하지만, 그녀는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네가 어떻게 해처나왔는지등,  나에 대한 아무런 궁금증 도 전혀 알려하지않는것에, 난 무엇으로 한대 얻어맞은듯한 황당함이었다.   그녀로 부터 들은 말들은 –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이다,  너의  아이구 인생이 하도 힘들어, 네가 너무 바빠서….그녀는 돕겠다고 아무것도 제안한것이 없었고, 그녀 자신조차도 아무 도움이 없었다.

어느 늦은 밤 이런 말들을 적어봤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 그들의 방문이 거의 반쯤 지나는때, 난  비탄에 빠져있었다.   내가 원하던 그런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갖일수 있다는 이론에 웃음밖에 안나온다.  그러나 나의 이 바램, 나를 알고있고 , 나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엄마의 모습….그런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좌절에서 오는 침묵과  점점 더 크게 와 닿는 외로움으로,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기다리며, 평온함을 느끼는 5살 짜리 아이로 돌아갔다.   이 주일들은 가장 마음이 아픈 기억들로 꽉차있었다.    엄마가 내게 가까이 오려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엄마를 되도록 멀리하려고 재빨리 나의 손을 빼버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것에,  아픔을 알고있음으로 사랑이 얼마나 다른이에게 도움을 줄수 있을까 하고,  눈물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엄마에 대한 분노가 꿈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사랑이라고 말한것이 내게 충분하지않다고 느끼며, 엄마에 대하여 화가남을 느꼈다.

시간은 계속지나갔다.   그리고 한주일씩 지나감에 따라, 이 여정이 엄마와 나와의 사이가 좋아지는것 보다, 내가 그동안 여러가지에 대하여 느끼던,  자신의 기분을 절대로 그대로 스스로 표출하게 허용하지 않았던것을 표현한 것에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매번 엄마가 나를 볼때, 난 거기서 간절한 사랑을 봅니다.   난 계속 불편한 아픔을 느끼지만, 움츠리고 질겁하는것은 없어졌다.

엄마와 난 엄마가  10여년도 넘게, 전에 알게된,  늘 기략이 풍부한,  옛 친구를 만났다.   Kay는 나와 함께 하는  Tour의  통역자였고, 그녀는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통역해준 사람이다.  (별도로, Kay는 그녀자신의 아이들을 잃고, 다시 만나게되는 개인적인 아픈 일이 있다.   그녀는 솔직히 다시 재회하는 만남이 얼마나 어려웠고, 계속 그런 어려움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엄마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있다.)   이번 만남에서 나의 친구 Kay는 엄마가 나를 다시 만나고,  내가 만들어낸 나의 작은 가족을 보며 얼마나 진실로 행복했는지에 대하여 되풀이해 말해주었다.   엄마는 오직 그녀 자신을 보고, 그녀의 딸을 보기 위해 미국에 왔다.   난 이번 방문이 정말 그녀의 하나뿐인 목적, 바램을 위해서 왔다고 믿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순전히 꾸밈없는것에 믿지않고 의심하는것이 점차 줄었다.   Kay 역시  나의 생각들을 설명하는 여유를 주었다.   난 마침내  엄마가 이곳에 와서 3개월씩이나 계실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되돌아 보니,  시간은 빨리 갔지만, 정말 쉽지않은 것이었다.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시간의 뒤틀림의 조정이 힘들었던것도  함께 나누었다.   홀로 이 여정을 겪어왔고, 그래서 지금 엄마가 내게 이야기하고, 사랑을 표현하는것이 어떤 침입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나의 아파트에  종일 그냥 앉아서, 아무것도 아지 않고 있는것에 내가 얼마나 낙담했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난그들이무료할거라는 생각으로 힘들었고 그래서 이것을 고치려고 했다.   맙소사, 그들의 생각으로는 그들은 휴가중이고, 완전히 행복하며, 나의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동에 기쁘다고 했다.    웃어야할 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모든 행동을 조용히 무언의 증인으로 지켜보며 나의 인생을 살기시작했다.   난 엄마와 남동생을 내가 발표하기로 되어있는 NYU 대학에 데리고 함께 갔다.   그들은 내가 일하는것과, 행복한 모습, 그리고  나의 본분, 자질을 보았다.   그날 일을 모두 마친후 엄마는,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고 말씀하셨다.   난 이말을 자라면서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는데, 겨우 6주만에  이런 말을 듣다니,  엄마가 그녀 얼굴의 모든 근육과 신경을 움지이며, 감출수 없는 기쁜 얼굴로  네가 자랑스럽다 고 하시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도 힘이빠지는 기분이였지만 좋은, 행복한 쪽의 무기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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