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아이

여러분중 이런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찾은사람은, 당신 자신이 운좋은 몇명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나의 할머니께서 일년전  오늘 돌아가신것을 알았다.   난 온종일 그녀로부터의 어떤 신호를 기다렸다.  난 그녀의 목소리를 상상으로 자주 듣지만,  그녀의 푸른눈과,  삐거덕거리는 듯한 웃음이  그립다.

난 그녀의 흔적을  여러 곳곳의 아이들의 생일파티에서  찾았다.   그 생일파티에서 선물로 나누어주는 구디 백안에 있는 게임이,  나의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것이다.    작은 노 모양의 패들에 공이 긴 고무줄로 연결되어 있는것이다.   그녀는 공을 패들에 치는것을 놓치지않고, 거의 백번정도 칠 수 있었다.  정말 그녀는 엄청나게 잘했다.   이런 해가 없는 장난감을 나의 아들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알아내지 못하는것을 보며,  나는 재미있어 했다.   이것은 Lego 도 아니고, 캔디도 아니라서,  난 그들에게  사용법을  별로 가르쳐 줄 필요를 못느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스러운 아이.   이말이 그녀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렀던 것이다 –  한국에서 일년후에  돌아와 그녀와 함께 생활한것이 정말 감사하다.   그녀는 내게 있을 곳과, 사랑과, 또 저녁에 몇시에 집에 오든간에 꼭 따뜻한 차를 주셨다.   그녀는 내가 일하면서 엉뚱하게 한일,  TV보다 훨씬더 흥미진진한 드라마인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하셨다.   그녀는 내가 동료 입양인들과 함께 하는  나의 일을 존중해 주셨고,   내가 Ivy  League 대학원에 들어갔을때는 정말 날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녀는 내가 다르다는 것을 사랑하셨고, 그러나 내가 언제나 좋은 성실한 아이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셨다.   그리고 특히 그녀는 내가  George와 함께 가서 본 영화에 대하여 전체 줄거리를 다시  이야기해 드리면 너무 좋아하셨다.   그녀는 George를  바로 금방 사랑하셨다.    결국,   조오지는 그녀가 사랑했던 두 사람,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남동생과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마치Earnest 나 다름 없는, Oscar Wilde 연극처럼.

무엇이 나의 할머니를 그렇게 특별히 만들었는가 하면, 그녀 자신 그 자체였다.    12형제의 제일 막내로서,  거의  정신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많이 옮겨다녀서 “ 주소록의 카드에 새 주소를 쓸수 없을 만큼 빈 공간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살림이 곤궁한 빈곤속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말하는 것과  “Workhouse” 로 보내졌던 날을 기억하는 정도의  가까스로 최소의  교육을 받았다 – 워크하우스는 지금 우리가 고아원이라고 부르는 곳이고,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몇번씩이나  옮겨다녀야 했다.   그녀의 삶에서 오직  꾸준히 지속되는 것은  하느님과 천주교회였다.   그녀의 빈곤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로 누구보다도 더 힘든, 최고의 고난이였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들은것은,  괴로움도, 후회도 어떤 권리나 수치도 절대 아니였다.    그녀는 나름대로 작은 약속을 스스로에게 했다 – 아껴서 저축하고,  착하고 진실한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절대로  옮겨다니게 하지 않겠다고.   그녀는 그 약속들을 전부 지켰다.

무엇이 나의 할머니를 놀랄만큼 기막히게 했는가 하면, 나를 사랑하신것이다, 그녀의 한국손녀를, 조건없이 사랑하신 것이다.   다른  조부모들이 차별대우 하는경우도 있지만,  그녀는 나를 그녀의 다른 손자들과 똑같이 대해 주셔서, 나의 기분이 상하게 하신 적이 없다.    그녀는 정말 그녀 세대의 틀에 박힌 전형적인 사람중의 하나였다 – 신에 대한 경건한 마음, 보수적이며, 조금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배웠다.   그리고 브라운 색의 피부를 갖인 사람을 설명하는데 있어  “유색의” 이란 말을 쓰지 않았고, 절대로 나를 “동양인” 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그녀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는것을  절대로 설명하려하지 않았다.    난 이것을 다른이로부터 들었다.   그녀는 지역의 식품상 주인에게까지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려 노력하셨으며,  정말  힘들게 열심히 다른 말들도 기억하시려고 애쓰셨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인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녀는 절대로 나의 힘든, 어려운 질문들이나, 나의 과도한 견해에도  겁내지 않으셨다.    또 그녀의 실수에도 절대 이쁘게 보이려 감언하지 않으셨다.   내가 나의 친엄마를 만난후에도,  나의 입양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에 대하여 절대 의문을 제기 하지 않으셨다.   나의 약혼반지를 처음 본 사람이 할머니며,  또 나의 성장과정에서의  많은 획기적사건들을 처음 들은 사람도 할머니다.    그녀는 내가 엄마가 되었을때 정말 좋아하셨다.    그녀는 나와 함께 그녀의 새아기 엄마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못기다릴 지경이였다.    또  할머니는  만약 그녀가 아이들이 태어났을때, 당신이 이세상에 없을지도 모를경우를 생각해서,  나의 아이들을 위하여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뜨개 이불들을 만드셨다.    내  삶의 행로를 어렴풋이 보고, 지난날을 되돌아 보며, 내가 힘들고 어둠에 있었을 그 모든 순간들을 볼때,  그것들 대부분이 미세한 명멸하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나의 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이여.  그녀는 내가 사랑을 느끼게 해주셨고, 나의 말을 들어주셨고, 나를 받아주셨다.    그녀는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셨다.

누구든 이것을 읽는 분께, 당신도  이런 사랑을 갖고,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 사람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다면, 그들에게 알려주세요.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