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본분

입양된,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의 친구들과 최근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의 쟁점은 과연 우리들 자신을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것에 이르렀다.   이것은 매혹적으로 계속되는 화제이고,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궁금한 점이다.   젊은이로서, 난 나의 친구들 아기 앨범들을 자세히 찬찬히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의 사진을 보고, 가족간에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사람들을 보고 가족특유의 성향이나 개성을 발견하는 사람이 나이며, 이런 점을 그들에게서 찾아낼때 정말 두려움같은 경외의 놀라움을 느낀다.  만약 내 자신을 나의 아이들에게서 볼수 있을까 하는점이 내겐  늘 궁금하게 여겨졌다.

신체적으로, 나의 아이들은 남자형제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다.   그러나 순 한국인인것이 그들이 누구를 더 닮아 보이는지 구별하는것이 좀 힘들다.  나의 첫 아이가 태어났을때를 기역해 보면, 사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꼭 빼다박은 모습이었다.   난 나와 비슷한 점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엄마들은 “ 아기만 안낳았으면, 당신이 엄마인것을 우린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고  얘기해 주면 기뻐한다.   난 그런 말을 듣는것이 그리 즐겁지 않다.  엄마로서의 어떤 모습, 이런것을  볼 수 있어야한다.  나의 아이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만큼이나 길고, 그는 자라면서 분명한 웃음거리가 될 소지의 나의 하얀피부를 갖고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그의 성격이 가장 많이 나와 닮은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괴퍅스러운 성격이라든가,  쇼가 끝날즈음, 완전히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더” 보고자 원하는 미리 행동하는점,  새로운 환경에 꽤 불안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감지하지 못하는 냄새도 잘 맏는 재능, 새로운 단어, 어휘를 좋아하는 점, 그의 강한고집, 컨트롤하려하고,  무조건 확실하게 싫어하는 시끄러운 소리등,  모든것이 나와 닮았다.    난 항상 입양된것으로 인해 이런 특징이나 버릇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어린시절에  이민오게된것이 나의  조심성이나, 고집이 세고, 내 방식대로 컨트롤하려하는것에 영향을 준것같다.   그러나  나의 아들에게서 분명하게 볼수있는 나의 성격을 보며, 나의 입양생활이 얼마나 강하게 나의  DNA에 작용했는지 의문을 낳게 한다.

DNA의 영향에 관한 의문은  반복해서  나의 입양된 친구들과 때때로 언제고 얘기하는 주제이다 .   이런 것이 “닭이 먼저냐, 아니면 달걀이 먼저냐” 하는 딜레마와 같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습관이나 성격이 유전적인것인가, 아니면 입양인으로서의 생활에서  영향을 받은것인지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의 어떤 강박과념적인 사랑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우리가 부모로서  그들에게 가르친것이 영향을 주었다.

이런 여러상황에 첨가해서, 또 다른 DNA접근을 생각해 본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고, 또 다른 그의 소질, 특성들로 인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가 하지 말아야할것을 했을때, 잘못한것을 알고, 그가 재빠른 키스와, 포옹을 하는것, 가족이 모두 다 어디에 있는지를 항상 알아야하고, 모두 함께 있을때만 기뻐하고, 물건에 대한 고집스런 애착, 그의 충성심, 그리고, 아 그의 완강한 센고집도…. 나다.

성격상으로 단지 이런 불투명한 개념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난 충분하지 않다.   난 정말 그들이 내게서 어떤것을 갖고 있는지 닮은점을 알고 싶다.   나의 어릴적사진이 없는것이 날 더 진지하게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 간절함이  나의 첫째 아이가 한살이 되었을때 우리를 한국으로의 긴여행을 가게 했다.   난 변명으로 한국전통 전설을 이용했는데, 정말로 엄마께서 그를 보시며, 내게 말하길, 아이가 나와 아주 똑 같이 생겼다고 하셨다.   내가 아기였을때 내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엄마가 날 기억하는것을, 난 그말을 꼭 들어야했다.  이말이, 내 아이의 모습이 내가 상상하는, 가장 비슷한 나의 어릴적 사진일것이다.   난 엄마가 아이를 처다보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야했다…. 엄마로 부터 나에게, 또 나로부터 아이에게.  그 한국방문은 정말 대단했다.  남들의 방해없이 조용한 호텔방에서, 우리 3 대는 만났고, 이 만남은 내가 꼭 예상했던대로 였다.   엄마가 내가 꼭 들어야할 말을 하셨고, 나의 아들은 그녀를 금새 좋아했다.  난 지금도 그때 그 만남이 그렇게 쉽게 잘된것에 놀란다.   그렇다, 그는 정말 나와 꼭 닮았다!  우리는 두번째 아이때에는 한국방문을 못했다.  그러나 사진을 보내드리고, 그는 정말 내가 때어났을때와 똑 같은 모습인것을 난 다시 확인 했다.

엄마노릇하는것은 나와 나의 입양된 친구들사이에서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반응들을 불러일으킨다.   한가지, 여성으로서, 우리는 모두 우리의 아이들을 잘 양육해야할 필요성을 안다.   우리 모두는 고통을 참고 견디며 이런 가능성을 만들었다.  이런것이 시간의 반영인가 아니면 우리들 자신 그대로 인가?   난 나의 아이들을 키우는것을 사랑한다, 또 그들과  함께 가깝게 있을수 있는것과, 그들들 위해 물질적, 신체적으로 필요한것을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우린 모두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는것 보다, 아이를 더 많이 안고다닌다.  나는 모든 한국여성들이 그들의 아이를 등에 업고다닐때 쓰는 포대기까지 샀다.   우리에겐 이런 애정어린 부모역활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들중엔 나아준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 있고,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확실하게 엄마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딸들을 갖인 여성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사람같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열망이  그들자신의 삶에 있는듯하다.   나의 여동생이 딸을 임신했을때, 그녀는 정말로 그녀를 낳아준 엄마를 위하여  애도하고, 비탄에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누구인가 알고자 했다.   그런데 나의 여동생이 남자아이를 갖었을때는 감정적으로 비교적 덜 괴로워했다.   딸을 갖는것이 아들을 갖는것 보다 무엇인가 감정적으로 더 가슴에 아픔을  일으키는지 의문이다?  비록 일반적인 의문이 있었을 지라도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지?”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너무나 깊이 사랑하므로,  그녀가 아이를 낳거나 아무런 힘이없는 입장을 알고, 이로인해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전혀 다시 볼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보장도 없이  그녀의 전 남편의 가족에게 넘겨주는,  아이를 “포기” 할수도 있는 여성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그 감정을 나누며, 심원한 충고를 잊지않는다.

어머니 역할은  어머니들만의 모임인 또 다른세계로의 입문을 의미한다.   나의 삶이 어디에 있든,  이 정체성은 절대 내게서 떠나지 않을것이다.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내가 어떤 결정을 내던간에 내가 누구의 엄마라는 것을 제일 첫째로 둘것이다.  이것은 고무적이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위압적인것이다.   왜 그 많은여성이 들어오기를 원하는지 알것 같다.

난 여러해 동안 입양 부모들에게  부모역할에 대하여 이야기한후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배경을 보고 아이 입양을 선택하려는 부모에게 충고를 주었었다.   지금은 모두 다 성장했고, 재미있는 사실은 서로 연락도 되는데, 이들중 어떤 여성은 나와 다른 어머니역할을 하고 있지만, 난 그들과 친구로서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난 진기한 몇명의 친구, 그들의 추한 삶을 함께 동참 할수 있도록 허락하고, 사랑은 조건이 없다는것을 배우도록 허락한 보기드문  친구를 찾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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