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아이였을때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생각하고, 아이처럼헤아렸습니다….

…..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  고린도 1서 13:11

한국어로, 입양된 사람을 의미하는  마지막 부분의 단어는 영어로 직역하자면 ‘아이’ 나 ‘아기’ 이다.    겨우  바로 최근 12년간, 아마  더 적게,  입양인들은 “입양인”- 성인으로서,  스스로의-정체성을 가졌다 .   여기 미국도 역시, 입양된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할지에 대해 논쟁이다.   어떤이들은 “어른 입양인” 이라 부르는것을 선호하고, 다른이들은 “입양된 사람”이라 하거나, 아니면 “입양인”이라고 한다.  나는 “어른 입양인” 이라 부르는것을 좋아하는데, 이것이  다른것보다 결국 덜 한정된 느낌이고,  난 입양되었던것이 아니고, 입양됐고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것이다.   이것은 입양된 사람을 부를때 , 어떻게 표현해  부를것인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많은 입양인들이 왜 그렇게 우리의 신실한 삶을  발견하는것이 힘겨운지 진심으로 알것같다.    우리들중 많은이는,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를 입양한 성인들에게 본질적으로 이식되듯,  즉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우리가 믿듯, 이런것이 정말 우리가  독립하거나, 성장하거나, 어른이 되는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누구의 아이라고 인식되어지는 것이 늘 묘한 기분이다.   어는순간  입양인이 어른이 됐다고 여기고,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할 때가 됐다고 얘기해줄때 그 책임을 받아들일수 있을까?  언젠가  난 뉴욕시에서 있던 한국의 날 퍼레이드에서  자랑스럽게 나의 젊고, 어른이된  입양인 친구들과 걷고있던것을 기억한다.   한구룹의 할머니들이 작은 한국 국기를 흔들고 있었는데,  이들이 몇몇의 아이들이 그들의 백인 미국인 부모와 함께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할머니들은 곧 이 아이들이 한국에서 입양온 아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이들의 손에 웃으면서 국기를 쥐어주기 시작했고,  동정어린 연민으로 혀를 끌끌찾다.   나는 한 할머니에게 닦아가서, 한국말로, 저도 하나 갖고 싶다고 하자, 날 놀란 눈으로 보며, 할머니들끼리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 너는 정말로 크구나!” 라고  말했다.  그들은 깜짝 놀랐고,  그들앞에  많은 한 구룹의 입양된 사람들 -어리게는 9살부터 많게는  30대까지의 입양인을 보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   그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실제로 성장해서 어른이 된것이 좀처럼 실감을 못하는것이다.   이 상황이 그런 순간이었다,한국이  50여년의 입양역사를 갖고 있는 지금도, 입양아 라는 그 말이 우리가 지금 누구인지, 거의 나이를 먹지않음을 반영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날 생각에 잠기게 한다…..내가 믿기론 오직 우리같은  구룹의 사람들만 늘 어린아이로 언급하고 있고,  영원히 우리의 부모 – 나아준 부모와 입양한 부모와  서로 얽히게 연관된다.  당신의 입양 상황을 누설하고,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질문들은, 당신이 생각을 했던, 안했던간  나아준 생모를 찾았는지에 연관이 된다.  바로 잠시후, 당신은 분명 아주 훌륭한 부모를 갖고 있을거라는 극도의 칭찬을 들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생각이지만, 당신은  당신의 입양부모와의 관계에 대하여 아마도 힘들고 복잡했거나, 아니면 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생모를 찾는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하며,  당신이 어떤것을 부정하는것처럼, 모든관중을 혼란스럽게 보이게 했다고  시인한다.   입양된것에 대하여 적절한 감사가 없거나,  친가족을 못찾은것에 대하여 그만한 걱정이 없다면, 이것은 당신이 이런 문제에 처한것 같다.

내가 어른으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입양되지 않은 나의 많은 친구들이 얼마나 그들의 엄마/혹은 아버지, 다른나라들에 있는 형제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겨우 일년에 한번, 혹은 두번정도의 만남만을 갖고,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음을 알고 매우 놀랐다.  이런것이 내가 정말 열광적인 자매라는 소리를듣거나, 나의 삶에 이젠 무관해야할 엄마와 정도  이상으로연관되는것이 어찌할바를 모르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임을 알았다.   죄가 아니고, 단지 단순한 사실이다.   그래서 난  왜 내가 나의 가족과 나의 감정에 대한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히려, 내가 왜 나의 가족과 나의 감정, 느낌을 나누며, 적극적인 관계를 갖기위해 어쩔수 없이 강요되는 느낌을 받아야하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나의 부모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가,  또  입양기관에 대한 좋지않은 발언을 하면, 말할 필요도 없이,  나와 같은 입양인들이, 누구나 다 그들의 가족과 별로 특별한 관계가 없는  다른 모든이와 별로 다를게 없어 보인다.

입양의 세계에는, 늘 아이와 아기에 대한것이다.  다큰 아이들이 가정을 필요로 한다는 광고는   좀체로 보기어렵다.   장래의 입양부모될 사람이 찾아와 8 살된 아이를 원한다고 말하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프레젠테이션이나, 워크샵, 기사, 사진등 … 은 항상 아이에 관한, 아이들의 것이다.  난 가장 성공적인 입양후-프로그램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9살 까지 이며, 그리고 여기서 끝난다.  가끔 만약 당신이 입양된 아이들이 나이를 먹고 성장한 입양부모를 입양행사에 초대하면,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입양부모 명단에 있음이 모욕당한것처럼 정말 대단히 화를 낸다.  이런 전문적인 분야의 사회복지사로, 입양인으로, 그리고 입양분야의 일을 하는것이 아직도 희박하지만, 난 끊임없는 문제, 곤경에 부딪친다.   나의 친구들,  그들자신들이 아이를 입양한후, 이 전문분야에 들어온,  대부분의 입양부모들인데, 난 끊임없이 그들 자녀들의  반영으로 지켜보고 있다.   난 또 때때로  느끼는데, 그들의 가설에 공범자이다: 누구의 아이이며,  딸이라는 것이 가장 편안한 나 자신인 것이 정말 때때로 매우 더 쉬운것을 안다.

이러한 것이 날 우리 입양인에 관하여 생각하게 한다.   이 구룹의 입양된 사람들은 절대 어른으로서 언급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 우리의 어린아이같은  것들을 버려야하고,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들을 갖고 있으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우리 스스로의 인생 여정을 갖을까?  나의 몇몇 친구들과의 어떤 실망이  어린아이같은 모습으로  모두 이해하며, 그들이 원하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갖을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오직 우리가 어른이 되고, 배우는것은 인생이 절대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가질않고, 삶은 그냥 가는것이다, 계속 움직이며, 절대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이것이 귀찮은 느낌이 들던간에, 난 이말들을 사용할것을 주장한다 “입양인” 이라고.    난 한국말을 사용할때마다 “입양인” 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말역시 쉽게 나오지 않는다.   때때로 어떻게  내 자신에 대하여 아직도 잘 설명할지 모르는나 자신이기에  나의 어린아이같은 것들을 다 버렸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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