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입양된 날, 비행기를 타던날, 기념일, 그리고  내가 가장덜 좋아하는, Gotcha Day….. 그날 우리는 고아원에 왔고, 그날 우리는 가족이 되었고,  그래도 상당히  일년중 가장 최고로 축하하는 날이 되었다.   이런날을 무어라고 부르던간에, 이날은 우리가  가족이라 부를수 있는  작은 구룹에 속한날이다.  이날은 나의 여동생과 내가, 간단한 전화로 조용히 기억하며, 오직 우리 둘만이 영원히 함께 나눌수 있는 날이다.   어릴적에는, 난 이날을 아주 좋아했다.   이날이  두번째 생일같이 느꼈졌고,  더 좋게, 더 특별하게 여겼던것은, 아마도 엄마께서 이날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날같이 호들갑스럽게  다루었기때문이었다.  나의 엄마를 아는 분은,  이날이 굉장한 날이라고 말할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니, 이날은 파티도, 축하연도 없이,  나의 여동생과 나, 우리 서로가 가족으로서 선언하고, 확언하는 날이 더 맞는 느낌이다.

올해도,  이날이 별로 다름없었다.  전화해서, 멧세지를 남겼다.  잘했다.   하나 예상치못한 것을 제외하고.

가족을 방문하려  잠시 떠나있었는데, 기술의 마력으로 나의 전화가 한국의 모든지역에 간단한 text message로 연결된것을 알았다 – “안녕하세요??”   CYJ였는데,  내 고아원의 “어린 남동생”이였다.   그는 늦게까지 일하고 있어서 시간이 틀렸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정말 놀라고 반가움에 감격했다.

CYJ는 teenager로서, 내가 OHK(나의 고아원)에서 일하고 있던해에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를 마쳤다.   그는 항상 뭔가 특별한것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를 미국에 나와 함께 데려오려고까지  노력했었다.   그의 어머니같은 존재인 큰누나도 그가  “일생의 기회”를 얻기를 바라며, 미국에 갈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 오는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7년간 우리는 서로 연락을 했다.  매번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때도, 전화해서 만나도록 노력했다.  고아원을 떠나야 할 나이가 다가옴에따라, CYJ는 다른 17살의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는 다행히 이미 나이가 들은, 큰 누나가 있었고,  그래서 거주할 곳이 있었다.   돈은 없고, 단지 일할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마침 알맞은 때에, 그는 컴퓨터기술을 익혔고, 지금은 디자인 회사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그의 여자친구의 가족이 그가 “고아”였다는 것을 안후 그와 결별한 그의 여자친구를  만난적이 있고, 지금 현재 그의 사랑인 여자친구와의 사진들도 보았다.   정말 귀엽다.  매번 우리가 만날때마다, 그는  나를 방문하기위하여 미국에 올거라고 하며,  어쩌면 한국을 떠나는 것이 좋을것 같다고 얘기한다.   만날때마다  난 그에게 조금의 용돈을 주며, 우리의 다음 만남을 지키기 위하여 사랑으로 포옹해준다.

CYJ는 허심탄히 소리내 잘 웃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하는 젊은이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한국남자이듯, 조용하고, 말없이 좀 내성적이며, 그의 지난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하여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다른 친구들에 대하여 –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누가 결혼을 했는지, 누가 아이를 갖었는지, 또 누가 크리스찬이 되었는지 등등….. 이 모든 중요한 일들을 내게 다 알려준다.   그는 이 구룹의 사진들 – 스키여행, 소풍, 저녁시간의 만남등의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불행히도, 난 다른 친구들을 만날기회가 없었다.   그들과의 연락이 두절됐다.

기본으로 거주할 집이 없는 아이와  17년이란 세월을 연락하고 지낸것은 긴 시간이다.   우리는 둘다 주소가 바뀌거나 이메일, 전화번호가 많이 변경될때마다  미안한 마음이였다.  그러나 매번, 그는 날 어떻게든 찾았고, 그래서 이 text가 정말 놀랍고 기뻤다.   난 한국어를 쓸수 없고, 그의 영어는 썩 잘하지 못하지만, 난 바로 그가 동창회같은 모임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8월 16일, 그는그의 누나와, 그녀의 딸과 함께  또 다른 가족같은, 무리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OHK로 가는 중이였다.   매년 8월 16일, 그들은 이렇게 한다.  그들은 고아원에 다시 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얘기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는 그들의 이름을 빠르게 줄줄 얘기했는데, 꽤 긴 리스트었다.   그들의 어린 얼굴의 스냅사진들이 내 눈앞을 스쳤다.   아마 난 더이상 그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와 얘기한것과 그들에게 나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8월 이날이면 지금 나의 고향이된 이나라에 내가 도착한 날임을 인식하고, CYJ는 오직 그가 집이라고 부르는 그곳의 “가족”과 함께함을 안다.  이날이 의미하는 바가 지금은 훨씬 더 깊다.   두개의 , 정말 다른 가족의 순간이 이 세상 정반대의 극과 극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괴롭고도 즐거운일이다.

몇몇의 그들로 부터 소식을 듣기를 바란다.   조만간에 한국을 다시 가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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